맛 너머 아침밥

매일 하루를 여는 그때

by 오진미

겨울 이른 아침은 깜깜하다. 군데군데 불 켜진 집이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잠들어 있다.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언제부터인지 알람 소리를 듣지 않아도 눈이 떠진다. 5시를 몇 분 남겨둔 때다.


휴대전화로 음악을 틀거나 노트북을 켜고 고요를 깨운다. 일어나자마자 밥을 하기는 시간이 아깝다. 식탁 의자에 앉아 거실 어느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십여 분이 지나갈 무렵이면 달걀을 삶고 토마토를 데쳐서 주스를 만든다.


이 과정이 지나면 그때부터 아침밥을 준비한다. 아침에는 콩국을 끓였다. 차가운 바람이 불 때 어울리는 음식이다. 어릴 적에는 추운 날 과수원에서 이것을 먹고 허기진 배를 달랬다. 변화무쌍한 섬의 온갖 궂은 날씨와 쨍쨍한 볕을 받고 자란 청콩은 가루마저 푸르다. 이것에 적당량 물을 넣고 푼 다음 끓는 물에 숟가락으로 떠놓는다. 이때 함께 따라붙는 것이 채 썬 무다. 배추나 미역 등을 넣기도 하지만 난 무가 가장 어울리는 듯하다.

아주 약한 불로 보글보글 끓인 다음 소금으로 간한다. 콩가루가 국물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심심하고 부드러운 수프 같은 국이 된다. 여기에 갑자기 고구마가 생각났다. 엄마가 준 쪽파도 조금씩 시들어간다. 이것으로 무엇이라도 해서 빨리 먹어야겠다는 마음에 몸이 바빠진다. 이런 이유로 아침부터 튀김을 했다. 당근과 고구마 파를 넣고 아주 조금 만들었다. 음식을 만들 때마다 양이 많지 않으면 무엇도 그리 힘들지 않다는 걸 확인한다.


밥 먹기 직전 하는 요리는 샐러드다. 적당한 크기로 썬 양배추와 당근을 4분을 넘기지 않는 범위에서 단숨에 쪄낸다. 여기에 파프리카나 사과 등 집에 있는 채소들을 올린다. 소스는 들기름에 소금을 조금 뿌리거나 올리브유와 발사믹, 매실청을 더한 두 가지를 주로 활용한다.


식탁 매트를 깔고 남편 밥상을 차렸다. 아이들은 겨울방학이라 아침이 늦다. 종종 거르거나 가벼운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겨울날 하루 시작은 남편과 단둘이 할 때가 대부분이다.


남편은 별생각 없이 익숙하게 아침을 먹는다. 혼자만 뿌듯한 잠깐이다. 불과 몇 분 동안 차려낸 밥은 많은 바람을 담았다. 먹는 일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얼마일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순간을 통해 아프지 말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는다. 무엇이라도 해야 내 부담을 덜 수 있다는 다분히 나를 위한 해법이 숨어있다.

그가 이것을 알 리가 없다. 말하지 않으니 당연하다. 음식에 신경을 쓰다 보니 가끔이던 샐러드를 매일 준비하는 요즘이다. 내가 좋아서 하게 되었고 더불어 남편도 수혜자가 되었다. 집에 양배추와 당근 사과를 준비해 놓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매일 먹을수록 그릇 안에 담긴 채소와 과일 맛을 새롭게 안다. 양배추의 달콤함과 당근의 아삭함, 때로는 파프리카와 블루베리, 비트 등 채소가 지닌 색들에서도 그동안 몰랐던 다른 것들을 만난다. 비트에서 나오는 붉은색은 경험할 때마다 신비할 정도다.


돌아보면 남편도 이것을 함께 즐기는 셈이다. 매일 밥과 국으로 대표되는 밥상에 다른 것들이 등장한다. 익숙한 것은 그동안 그러했으니 당연하고, 다른 것은 새롭게 만나니 특별하다. 작은 사각형 식탁 매트 안에 서로 어울려 있는 그릇마다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 다분히 내가 그려보는 소박하지만 실현 가능한 세상이다.


아침밥에는 일상과 특별함이 함께다. 일상은 흔히들 지루하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것이 우리를 견디고 살게 하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밥심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어제와 비슷함을 미뤄 알지만 더불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맛보고 싶은 바람이 싹트는 때가 아침이다. 적어도 내가 준비한 밥상에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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