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달걀 김밥과 어묵 볶기
하루하루가 밥이다. 누구의 말처럼 돌아서면 밥이다. 유독 아침과 점심 사이가 짧다. 남편은 7시 전후로 아침을 먹지만 아이 둘은 그때마다 다르다. 큰 애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아침도 가볍게 한다. 둘째는 방학을 충분히 즐기기 위함인지 늦잠 자는 게 예사다. 9시 전까지는 일어나겠다고 다짐했지만, 절반의 약속이다.
어제도 오늘도 이상한 건 별로 찬을 만들지도 않는데 설거지가 가득하다는 것. 과장을 더 해서 누가 부엌 안에 들어와서 소꿉놀이하듯 음식을 만들고 대충 먹고 간 기분이랄까. 씻어야 하는 그릇을 앞에 두고 있으면 언제나 기분은 그저 그렇다.
그러다 이상한 건 적당한 온도에 설거지하고 있으면 괜찮아진다는 것. 고무장갑을 끼고 하면 피부를 보호할 수는 있지만 이런 느낌을 갖기 어렵다. 아침에는 그래서 맨손으로 했다. 수세미에 세제를 적당량 묻히고 따뜻한 물로 그릇을 닦아냈다. 접시가 하나둘 쌓여갈수록 묵직했던 몸이 깨어난다. 이걸 집안일이 가지는 나름의 즐거움이라고 하면 맞는 말일까.
움직인다는 건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설령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하다 보면 집중하게 되고 손이 움직일 때마다 일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며 상쾌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건 지금뿐만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는 특별한 일이다.
아침을 이렇게 열고 나니 점심이 고민이다. 메뉴는 아이들이 바라는 것으로 한다. 아침에 큰아이가 말한 달걀 김밥과 어묵볶이가 당첨되었다. 두 가지 모두가 가볍게 할 수 있는 음식이다. 김밥이라고는 하지만 재료가 달걀말이뿐이다. 어묵볶이 역시 떡 대신 어묵만을 사용하기에 재료가 단출해서 집에 있는 냉동만두 몇 개를 넣었다.
흰쌀밥을 짓고 달걀말이를 해두었다. 밥을 펴고 달걀을 올리면 김밥 완성이다. 어묵 볶기는 끓는 물에 고추장을 풀고 냉동만두를 넣고 5분 후에 어묵과 함께 충분히 익힌다. 국물이 어느 정도 잦아 들어갈 즈음 설탕을 조금 넣고 맛을 본다. 어묵에 이미 많은 조미료가 축적된 상태라 다른 것이 필요 없다.
음식이 다 되면 각자의 방에 있던 아이들이 모인다. 아이들은 탄수화물 폭탄이라고 하면서도 먹는 일에 손이 바쁘다. 김밥은 가끔 이런 스타일을 즐겼지만 어묵 볶기는 처음이다. 김밥과는 찰떡궁합이다. 어묵과 국물에서 나오는 모두가 외면할 수 없는 단짠 한 맛은 단순한 김밥 맛을 끌어올린다.
그렇게 정신없는 점심이 지났다. 아침 설거지를 지나 3시간 만에 가득한 그릇을 정리하면서 문득 이런 마음이 들어왔다. 내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밥을 하는 건 그들의 얼굴을 보기 위한 바람이라는 것. 음식을 만드는 일을 좋아하지만 매일 그것을 양팔 벌려 환영할 만큼은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혹은 정말 다른 이의 손을 빌려 대충 한 끼가 지났으면 할 때도 많다. 겨울방학 점심은 이런 마음이 끼어들지 않는다. 햇살이 오늘처럼 반짝하는 날 아이들과 밥을 먹는 시간이 주는 여유는 어떤 것과도 바꾸기 어렵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거실에 모여서 이런저런 놀이도 하고 텔레비전도 봤지만, 이제는 각자의 공간에 머무는 걸 좋아한다.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때는 점심이다. 그것도 내 손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른 것에 비할 수 없는 기쁨이다. 어떤 이는 음식을 만들고 정리하는 일이 쉼 없이 돌아가 힘들다고 하지만 난 이 시간 때문에 겨울과 여름이면 찾아오는 방학을 좋아한다.
내 진심이 이럴지라도 항상 같은 정도를 유지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배달 앱을 살펴보며 간단한 것을 찾는다. 방학을 한 달 정도 보낸 지금 돌아보면 그래도 여러 음식이 지났다. 꼭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라면이라도 내가 끓여서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후루룩거리고 먹을 때 신난다. 평범한 음식은 그동안 자주 경험하면서 가장 마음을 쓰고 생각나는 것들이다. 그래서 누군가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것을 떠올릴 때 김치찌개, 된장찌개, 달걀말이 등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이런 이런 이유 같다.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서 의미라는 건 내가 아닌 타인에게 강요하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곱씹어 보니 그러하다. 아이들은 나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지만 나와는 다르다. 당연하지만 그것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내 의미가 아이들에게 오해 없이 전달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순간은 점심이다. 내가 만든 음식이 식탁에서 춤을 출 때다.
굳이 정성을 들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이들이 바라는 것을 접시 위에 펼쳐놓기만 하면 대부분은 반가워한다. 낯선 음식을 내놓을 때는 그것이 어떻게 다가갈지 신경 쓰며 두근거릴 때도 있다. 그건 아주 잠시일 뿐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만들어준 밥을 달리 돌아보지 않고 맛있게 먹는다. 그것이 겨울날 점심밥을 쉼 없이 만들어내는 이유였다. 점심은 30분을 넘지 않고 빨리 지난다. 아이들이 방글거리며 먹고 난 후 식탁은 또 다른 내 시간이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서 다른 것보다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맞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와 마주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우리만의 시간을 위해서 먹는 일에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