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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09. 2021

내 친구 아이의 친구


휴대전화를 들었다 다시 놓았다. 집 밖으로 나가 누군가와 커피를 한 잔 하고 싶다. 3월의 며칠을 어떻게 보냈는지, 마음이 어떠했는지 수다가 필요하다. 일요일,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에 누가 나와 줄까? 한참이나 망설이다 용기를 내었다.      


나보다 다섯 살 위 언니다. 구청 글쓰기 수업에서 만났는데 긴 머리 웨이브 파마를 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색하지만 용기를 내어 먼저 말을 걸었다. 그렇게 알게 된 지 4년이 지났다. 언니지만 ‘쌤’이라고 부른다. 처음 만났던 곳에서 강사였던 작가 선생님이 수업 듣는 이들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한 까닭에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건축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침에는 어린이집에서 잠깐 일을 하고 오후 시간 대부분을 학원에서 보낸다. 처음 접하는 전문 분야이기에 수업 따라가는 일이 간단치가 않아서 그야말로 정신 집중해서 전력투구하고 있는 터였다. 이리도 바쁜 그를 불러 내는 일이 마음에 걸렸다. 그럼에도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연락할 이가 마땅치 않다. 주변을 산책하거나 혼자 카페에 가서 해결될 마음이 아니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마음 창고에 저장된 것들을 꺼내놓아야 했다.      


그는 내가 보낸 카톡을 보고 만나자고 했다. 대충 집안일을 정리하고 나가기로 했다. 그의 차를 타고 나섰다. 미소가 가득한 얼굴이지만 어딘지 피곤해 보인다. 나이가 들어서 배우는 일이 만만치 않다고,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루를 늘어놓았다.     


카페로 갔다. 그토록 마시고 싶었던 커피였다. 앉자마자 안부를 물었다. 한 달 만이었다. 그동안 쌓였던 일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겨울방학 동안 아이들과 지낸 일, 요즘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과 봄이 되었으니 어떻게 살아보려 한다는 계획 등 떠오르는 대로다. 그 역시 학원에서 20대의 수강생들과 함께 하는 일의 어려움을 차분히 얘기했다.      


집에서 목 밑까지 차올랐던 묵직한 감정들이 가벼워진다. 아이들 혹은 남편과의 대화에서는 채워지는 않는 거였다. 그 앞에서는 잠깐 숨겨두었던 내 마음을 활짝 열어젖힌다. 중년의 여성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섬세한 감정들이다. 싫다 좋다로 나눌 수 없는 것. 선명하진 않기에 무엇이라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지만 말의 앞뒤 느낌으로 충분히 전해진다.  

    

이해받고 있고 잘 들어 주리라는 믿음이 긴장을 몰아내고 편안함으로 이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함께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 하루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저녁밥을 짓고 말린 빨래를 거둬들인다. 비우고 온 뒤라 무엇을 해도 가볍다.     

 

친구가 그리웠다. 눈치 볼 필요 없이 온전한 나를 보여주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집에 돌아온 직후 ‘오늘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한 건 아닐까. 하지 말아도 됐을 그 얘기는 왜 했을까. 다른 이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다음에는 정말 조용히 있다 와야지’ 후회와 자책이 줄줄이 사탕이 되어 매달려 있지 않는 만남이었다. 눈치 보지 않는 것, 자로 재거나 다시 한번 생각해서 내뱉는 여과장치가 없어도 괜찮았다. 난 말했고 그는 들어주었다.      


그는 그랬다. 

“샘 잘 살고 있어요?”

“아무도 없는 이곳, 섬 같은 곳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내고 있다는 자체가 대단한 거예요.”

그로부터 이 말을 들었던 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낯선 곳으로 이사 와서 살아가는 내게 전한 위로며 격려였다. 

“샘 쉬어야 하는데 나오라고 해서 미안해요. 누군가를 보고 싶은데 그려지는 얼굴이 쌤이더라고요.” 

“괜찮아요. 나도 보고 싶었어요. 다른 때 같으면 내가 먼저 보자고 했을 텐데, 요즘 내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그래지 질 않네요.”

여러 설명이 필요 없다.      


월요일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하다가 말을 건넨다.

“엄마 체육 시간 끝내고 친구에게 말을 걸었거든. 근데 아무 대답이 없는 거야. 엄청 기분이 안 좋았어. 나를 무시하는 건지 못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이의 얼굴이 굳어지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3월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이들과 관계를 맺어가야 할 시기다. 좋은 친구를 못 사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언제부턴가 아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터였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잠시 망설였다.

“아마 친구가 못 들은 게 아닐까. 괜찮아. 기분이 별로였겠네. 아직은 처음이니까 이제 일주일 지났잖아.”

그러고는 아이를 다시 살폈다.  내 말이 효력은 없는 눈치다. 마음이 짠하다. 

    

학교에서 친구는 만병통치약 같다. 내 학창 시절을 돌아봐도 친구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하던 시간이 많았다. 반에 나와 맞는 딱 한 명의 친구는 나를 웃게 하고 편안하게 만들고 두려움을 없애주는 존재였다. 아이의 마음이 읽힌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사람은 사람끼리 부딪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그 길로 들어가는 준비운동 중이다. 나와 맞는 이는 우연히 걷다가 발견한 네 잎 클로버 같다. 아무리 애써도 안되다가도 어느 날은 내 옆에 그런 이를 두게 되는 것. 기다림과 견딤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아이에게는 간단치 않은 일이다.     


집을 벗어나고 싶은 일요일 오후의 나와 겹친다.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마음을 두들겼던 갈증, 몇 날 며칠 매일 쌓여간 내 얘기를 가볍게 털어내고 싶었다. 약속하지 않아도 달려오는 친구가 절실한 날이었다. 아이도 매일 학교에서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려야 할 터다. 내 불안이 아이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붙잡는다. 시간이라는 녀석을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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