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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11. 2021

화, 나를 들여다보기

  

“휴대폰 보고 있었지?”

“아니야. 엄마, 학교 시간표 확인하고 있었는데.”

아침은 가능한 별일 없이 보내려 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기에 조용히 준비하고 싶다.  어떤 상황에 대해 말이 많아지고, 왜 그렇게 됐는지 설명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불편해진다.  깔끔히 마무리되지 않은 채 봉합되는 일이 반복이다. 아이에게 건네는 말에 이미 화가 가득했다. 왜 난 휴대전화로 통하는 세상인 걸 알면서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고, 감정을 잔뜩 실어 툭 내뱉었을까?     


한 시간쯤 공원을 돌며 생각했다. ‘화’를 내는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도 내 마음처럼 안될 때가 많은데도 말이다. 아이와 남편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기는 마음이 ‘화’의 시작점이었다.     


“엄마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아침부터 미안해.”

아이는 신학기 학교생활만으로도 정신없는 날들이다. 오늘은 시험이 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아이를 힘들게 한 것 같아 아침을 준비하는 내내 편찮다. 식사를 끝내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아이에게 다가가 잠깐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했다. 아이 방을 열고 질책하듯 한마디 말을 던진 지 불과 30분 남짓 지난 시간이었다. 무심한 듯 돌아서 아이 방문을 닫고 나왔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찰나를 이기지 못한 내가 싫었다.    

 

잠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돌아보면 될 일이었다. 혼내는 것처럼 따져 물을 일도 아니었다. 아이가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고 있구나 정도가 적당한 상황의 판단기준이었다. 몇 시간이 흐른 지금 스쳐가는 게 하나 있다.  어렸을 적 들었던 말이었다. 아침은 하루 중 가장 머리가 맑게 깨어있는 시간이라는 것. 책을 보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으니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는 어려웠을 터다.   

  

‘화는 모든 걸 태워 버린다’는 말이 생각난다.

‘화’라는 녀석의 영향력은 상당해서 그동안 쌓아 두었던 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날려 버린다. 가장 가까운 아이와는 더욱 그러하다. 마음을 나누고 편해지기 위해 노력하다 화가 출몰하면 공중으로 흩어져 터지는 폭죽과도 같이 끝나 버린다.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제자리다. 화를 내고 다시 회복하기 위해 애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도돌이표를 계속 안고 살아간다.     


매일이 좋을 수는 없다. 화도 나고, 눈물도 흘리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웃음이 쏟아지는 날도 있다. 기분 좋은 행복한 날, 문제가 없을 때는 모든 게 다 괜찮다. 상황이 안 좋을 때 화는 다시 고개를 든다. 아이와 남편에게 원인 제공자라고 화살을 돌리지만 결국 시작은 나였다.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는 현실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해 불안과 걱정이 커지고  화로 나타났다.     


세상에서 가장 쉽지만 어려운 게 나를 아는 일이다. 꺼내 놓고 싶지 않은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때로는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될 일이다. 내가 편해지기 위한 최선이며 지름길이다.

“자기를  가장 잘 아는 건 오직 나뿐이야.”

아이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 때 종종 내가 하는 말이다. ‘아무거나 괜찮다’라는 말은 이상하리만큼 싫다. 어떤 것이든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했으면 좋겠다. 어른이든 아이든 자기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모든 일의 출발이라는 생각에서다. 현실에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밥 먹는 일처럼 습관으로 굳어졌으면 한다. 때론 복잡하게 얽혀 있고, 막막할지라도 우보천리의 마음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내 마음을 잘 안다면 그리 화날 일도 없을 듯하다. ‘알아차림’과 ‘멈춤’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린다. 화가 나는 순간을 알고 멈추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화를 그저 흘러가는 강물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만한 해법은 없어 보인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일, 그야말로 수행이 필요한 지점이다. 몸이 아프거나,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는 날에는 깊은 저곳에서 화가 싹을 틔우고 자란다. 그러다 누군가의 행동이  거슬리게 되는 순간 화가 불꽃이 되어 터져 나온다.      


화가 날 때는 잠시 여유를 부려야겠다.  혼자 밖으로 나가서 걸으면 어느새 가벼워진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다른 방으로 가서 음악을 듣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일은 과거가 된다. 안 좋은 결말로 치달을 수 있는 위기를 천천히 떠나보낼 수 있다.  

  

화가 지나가고 나면 언제나 몸에서 온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낀다. 짧게는 몇 분 길게는 하루 종일 뭔가 하고 싶다는 의지를 상실한다. 때로는 상대에 대한 미움과 죄책감까지 느끼며, 감정을 소비하게 된다. 그러니 화를 다스리는 것은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다.  아이는 학교에서 괜찮을까? 아침 일로  기운이 빠져버린 건 아닐까. 걱정이다. 큰마음, ‘모두가 괜찮다’라고 여기는 삶의 태도를 내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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