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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16. 2021

언니가 하루를 보내는 방법


3개월 만이다. 동네 언니의 전화다.

“집에 커피 마시러 가도 돼?”

시간은 그리움을 만드나 보다. 반가웠다. 운동복차림의 언니는 앉자마자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다. 그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느라 지난해부터 공부에 여념이 없다. 주부로 지내다 원하는 일이 생기면 언제나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그였다. 평소에는 털털하고 주위 반응에  민감하지 않지만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쉼 없이 달려갔다.     

 

하루의 일과를 물으며 차를 마셨다. 아이가 학교 가고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동영상 강의를 점심까지 듣다가 오후에는 운동하러 간다고 했다. 매일 함께 가는 이가 있어 한 시간 반 정도를 돌고 오면 하루의 중요한 일이 대충 끝나간다는 것. 그가 내게 물었다. 

“요즘 뭐하면서 지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글 쓰고 나서 운동 가요. 집안일하고 나면 다시 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고요.” 

언니가 다시 묻는다. 

“뭘 쓰는 건데? 어디에다 쓰는 거야? ”

 내 주변 이야기를 담는다는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가 좋아하니까 계속할 수 있는 거지, 나도 누가 나보고 이 공부하라고 했으면 매일 화가 나고 안 했을 거야. 처음에 강의를 들을 때는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겠거든. 그런데 한두 번 듣고 세 번째 정도 공부하다 보니 감이 오는 거야. 그때 기분은 정말 최고야. 그것 때문에 하는지도 모르겠고. ”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얼굴은 피곤하지만 편안해 보였다.

     

몰입감이 지금의 그를 이끈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를 만나서 수다 떠는 일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망설이게 된다.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종종 있잖아. 예전에는 그 시간이 즐거웠지만, 이제는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아. 집에 오면 피로가 밀려오면서 힘들어지더라고.”

해야 할 일이 있으니 하루의 몇 시간도 허투루 쓰는 게 안타깝다. 불필요한 관계는 가능한 뒤로 미루게 된다는 것. 혼자 책과 씨름하며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는 순간이 힘들지만 좋다고 했다. 엄마와 수험생, 동네 주변을 뚜벅뚜벅 걷기가 매일 그에게 주어진 중요한 일과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라는 틀 안에서 지낸다. 이 시간은 의식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무지개 같다. 정신을 붙잡으려 해야 날아가지 않는다. 하루 일과를 메모하고 기록하는 건 나를 든든히 받쳐 준다. 직장인이라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일이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일과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새벽과 점심,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려한다. 나처럼 전업주부인 경우는 하기 나름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현관문을 쾅 닫고 침대에 누워 있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설거지와 빨래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것 또한 촌각을 다투는 문제는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외면할 수 있는 것 주부의 특권이 아닌가 싶다.   

  

언니를 안지 십 년쯤 됐다. 보통의 엄마처럼 육아에 전념할 때 보다 요즘이 에너지가 넘친다. 두려움보다는 하다 보면 되겠지 하는 배짱 두둑한 모습으로 변했다. 지금처럼 원하는 걸 실행에 옮기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하루를 내 시계 방향대로 흐르도록 마음을 쓰는 중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심스럽지만 조금씩 시작됐다. 흐트러지는 마음을 붙잡는 일에 이것만큼 좋은 특효약은 없어 보인다. 하고 싶은 일을 중심에 두고 시간을 배열하다 보면 아침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 오래전부터 몸에 익은 공원 돌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해야 할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이 적당한 긴장을 불어넣는다. 티비를 홈쇼핑 채널에 맞춘 다음 넋 놓고 보다 시간을 날려 버리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게 좋다.      


내가 먹은 음식, 가족, 문득 떠오른 생각들 모두가 소중한 글감들이다. 잠자기 전에 내일은 무엇을 쓸까 고민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불안이라는 녀석이 끼어들 틈이 차츰 줄어든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과도한 생각을 멈추게 한다. 사람들은 생각하라고 하지만 뒤집어 보면 생각만큼 부질없는 것이 있을까. 생각은 짧고 몸을 움직여야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한번 불안이 일어나면 쉽게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그 녀석이 내게 다가와 나를 멈춰 세워도 찬찬히 살펴서 왜 그런지 돌아볼 정도가 되었다. 

   

‘지금 여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가 그리는 이상이 이뤄질 거라 믿었던 20대 시절, 누군가의 메모지에 쓰여 있었다. 당시는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다 지금은 그것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더도 말고 잘 사는 방법은 지금에 머무르는 그것밖에 없음을 절감한다. 언니의 삶이 빛나 보이는 것도 누구도 아닌 제 삶을 위해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건 예상치 않은 일들의 연속이다. 정말 아무 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느 심리학 교수의 말처럼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을 다치지 않고 지내는 방법일 것이다.  그건 오늘을 살아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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