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좋아한다. 작은 나무를 화분에 심고 커가는 걸 보는 건 당연한 듯하지만 때로는 감동이다. 공원이나 어느 카페에서 사람들을 사로잡는 키 큰 식물들을 갔다 놓고 싶다가도 부담스럽다. 시간이라는 양분을 먹어 아주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이 우리 집에는 어울린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내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을 때면 화원으로 가서 이들을 데려온다.
다른 방법도 있다. 집 주변에 부러져 뒹구는 작은 가지를 물꽂이 한 다음 뿌리가 돋아나면 화분에 심는다. 또 다른 하나는 나무에서 씨가 떨어져서 뿌리를 내린 아주 작은 아기 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내게는 십 년도 더 된 단풍나무가 그러했다. 내 삼십 대를 지켜봐 준 친구다. 내가 살던 서울 당산동 아파트 작은 숲에서 만났다. 당시만 해도 5센티미터에 불과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됐고 지금까지도 함께 살아가는 중이다.
초록이들과 함께 하는 지내는 건 적당한 거리와 관심이 필요하다. 지나친 사랑은 이들을 힘들게 한다. 과습으로 뿌리는 힘을 잃고 썩어서 결국은 곁을 떠나게 된다. 때로는 나무가 예상치도 않은 병에 걸릴 때도 있다. 단단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단이’라고 이름 지은 내 친구 역시 그러했다.
단이는 지난해 봄과 여름을 누구보다 멋지게 지냈다. 가지가 베란다 주변 다른 이들의 하늘을 가릴 만큼 뒤덮었고 초록은 집에 오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러다 여름이 지날 즈음 시들시들해졌다. 처음에는 그냥 물을 주는 일에 열심이었는데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졌다. 하얀 진딧물의 공격이었다. 식초물도 뿌려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약을 사 올까 하다 그냥 두기로 했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진딧물 약을 뿌린다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힘을 못 썼다. 가을에는 문제가 된 가지들을 잘라냈다. 내 키만 하던 나무는 앙상해졌다. 진한 초록을 띤 굵은 가지가 매력적이었는데 안쓰러웠다. 잎은 다 떨어졌고 별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가끔 물을 주면서 한편에 놓아두었다. 몸이 아파 회사를 그만둬야 할 만큼 힘들었던 시절 동무가 되어 주었던 녀석이었다. 괜찮겠지 하다가도 혹시 이별의 아픔이 너무 클까 거리를 두었다.
겨울이 끝자락을 달려가고 있었다. 물을 주러 갔는데 추운 날씨에도 초록 싹이 돋아났다. 드문드문 있던 해충의 자국은 거의 사라졌다. 특별히 해 준 것도 없는데 기운을 내고 있는 단이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3월에 접어들면서 단이가 다시 날개를 달았다. 너울대는 여린 잎으로 아침이면 내게 인사한다.
빨래를 널다 말고 나무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회복탄력성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삶을 모두가 기대한다. 그런데 단이가 그런 걸 해냈다. 대견하고 고마웠다. 해 준 게 없는데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온 건 봄날의 선물이었다.
아파트에서 식물이 살아간다는 건 이들에게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화분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가기에 비나 눈을 경험하는 것도 어렵다. 오로지 같이 사는 사람의 손에 이들의 운명이 달려 있으니 끝없는 기다림의 반복이다. 처음 꽃이 예쁘게 핀 나무를 사 와서 화분에 심는 순간에는 언제까지나 사랑을 주고 목마르지 않게 해 주리라 마음먹는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변화무쌍한 여름날의 날씨, 때로는 흔들리는 갈대이기에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단이를 통해 나를 바라본다. 요즘 들어 견딤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됐다. 나처럼 인내심이 없는 이에겐 정말 필요한 덕목이다. 오랜 시간 함께 했기에 이젠 가족이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다. 다시 보지 못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 내가 이런 생각에 머무는 동안 단이는 좁은 화분 안에서 부단히 힘을 내어 참아내고 싸웠나 보다. 반년 이상을 병상에 누워있다가 차츰 기운을 차렸고 꽃피는 봄에 벌떡 일어났다. 고진감래는 딱 단이를 두고 하는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