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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학 Feb 20. 2017

후기 - 윤경하

필리핀에서의 10박 12일. 우리 기수를 끝으로 하는, 마지막 해통의 마지막 팀이었다. 필리핀으로 향하는 ‘뱃사공’팀의 해통은 15일부터지만, 나의 해통은 14일 밤부터 시작된다. 성공회대에서 연호와 지민이와 함께 짐을 옮기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새벽을 꼬박 새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같이 박스를 옮기고, 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새벽의 인천공항은 생각보다 붐볐다. 줄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서 당황했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날아갔다. 필리핀 입국심사는 정말 까다로웠다. 어딜 갈 거냐고 물어봐서 ‘베사오’라고 대답했더니 베사오가 어디냐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베사오는 ‘마운틴 프로빈스’라는 주에 위치한, 우리가 필리핀에서 생활할 도시의 이름이다. 우리나라로 빗대어 말하면 강원도의 원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베사오를 가려면 마닐라에서 10시간보다 조금 더 길게 야간버스를 타고 가야해서 마닐라에서 잠깐 쉬었다. 마닐라 얘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하겠다.



베사오에 도착했다. 우리가 머물었던 마을은 해발고도 2000m에 위치한 ‘키니웨이’마을이다. 공기와 경치가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꼭 에니메이션 영화에 나올법한 경치이다. 산의 능선이 쭉 이어져 보이고, 산 위로 구름이 흘러가는데, 이 모든 게 나의 눈높이와 비슷하게 이뤄진다. 알록달록함이 가득한 곳이다. 꽃들과 집들, 벽들이 개성이 넘친다. 이 마을에는 또 길개들이 많은데, 하다못해 개들까지도 알록달록하다! 해발고도가 높고, 건기라서 그런지 바람이 차갑고, 햇살은 따뜻하다. 밤하늘은 정말 별빛이 내린다. 우리나라 천문대보다 더 잘 보이는 듯 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베사오의 밤하늘이 그리울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가을날씨와 꼭 닮았다. 동남아면 다 덥고 습할 줄만 알았던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초등학교 교육은 사실 준비한대로 완벽히 해내지 못했다. 너무나 변수가 많았다. 나는 가장 어린 친구들을 맡는 1,4학년 팀이었는데, 이 친구들의 수준과 문화를 우리가 먼저 고민해보는 게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가 초등학교 교육을 하면서 가져야 할 주된 목표는 무엇인지, 초등학교 친구들과 외국에서 온 형 누나들로서 친구들과 교감을 하는 것이 주 목표인지 아니면 그 친구들에게 새로운 교육을 경험시켜주는 게 주 목표인지 명확한 주제의식이 없어서 더 우왕좌왕했던 것 같아 약간의 후회가 된다. 다 해내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상황 변화와 빠르게 대처해야하는 순간에 순발력을 발휘하는 것을 배운 것 같다. 내 초등학교시절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도 많이 철없고 까불거렸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 느꼈다.



트래킹은 내가 이번 해통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이었다. 트래킹 첫 번째 날은 닦인 길을 걸어서 편하게 경치를 감상하며 걸었다. 두 번째 날 트래킹은 등산길이라서 조금 힘들고 경치를 구경하거나 그런 여유가 딱히 없었지만 등산길만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며 걸었다. 그리고 두 번째 날에는 계곡에서 잠깐 쉬었는데 계곡물이 너무 시원하고 깨끗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첨벙 뛰어 들어가 놀고 싶었지만(원래 물놀이를 딱히 좋아하진 않는다. 근데 그 때는 너무 더웠다) 발만 담그는 거로 끝냈다. 트래킹을 가면서 두 개의 마을을 들렸다. ‘탐보안’이라는 마을과 ‘빠나뭉언’이라는 마을을 갔는데 두 곳에서 공연과 체육대회를 진행했다. 문화공연을 하는데 호응도 거의 없고 그래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잘 진행하고 잘 해내서 만족스럽다. 체육대회는 약간 흐지부지해진 경향이 없잖아 있어서 많이 아쉽다. 아무래도 트래킹도 하고 공연도 해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 트래킹으로 만났던 마을 친구들의 이름도 모르고, 그 마을의 문화, 그 학교의 교육 등 그 마을의 이야기, 학교의 이야기, 친구의 이야기도 듣고 싶고 우리의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이 아예 없어서 많이 아쉽다. 그곳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해 아쉽다. 체육대회보다 그런 시간을 더 추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차로 다니기보다는 걸어 다니는 것, 학교 교무실 맨 바닥에서 자보는 것, 그곳에서 자랑하는 특산물을 경험해보는 등 여러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는 것은 아주 만족한다.


원래는 우리나라 법상으로는 우리가 홈스테이를 하면 안 되는데, 우리 팀과 학교 사이에서 얘기를 하고 홈스테이를 3일간 하게 되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22명이 다 같이 생활하려다보니 화장실 문제, 물 문제 등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게 많아서 홈스테이를 남은 기간 동안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도현이와 같이 홈스테이를 했는데 우리 홈스테이 호스트 친구의 이름은 ‘피제이’였다. 피제이는 우리랑 동갑이고 핸드폰을 많이 하는 친구이다. 처음에는 피제이가 말을 많이 걸어주고 많이 챙겨주고 그랬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더 말을 걸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핸드폰, 텔레비전과 가까운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친구 같았다. 홈스테이를 조금 더 일찍 했다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피제이의 가족은 4남매 가족이고 슈퍼를 한다. 이번에 슈퍼집 아들을 경험했다. 최고다. 가족이 어떻고 집이 어떻고 따질 것 없이 나와 도현이가 쓸 둘만의 방이 생겼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마음 편히 화장실을 가고, 마음 편히 씻을 수 있고, 빨래도 할 수 있고, 편히 밥 먹을 수 있고, 간식도 챙겨주시고, 그냥 조금 더 편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홈스테이를 하기 전까지 물이 없고, 귀찮고, 피곤하고 해서 딱 1번밖에 샤워를 못 했었는데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니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홈스테이를 시작한 날 샤워를 다 하고 나왔을 때의, 몇 일치의 밀린 빨래를 다 깨끗이 빨아버리고 퀴퀴한 냄새 없이 깔끔한 나의 옷을 봤을 때의 상쾌함을 난 잊지 못한다. 



호스트 프로그램은 우리가 계획한 프로그램들 중 가장 힘들었던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은 더 친해졌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아니다. 피제이가 약간 다른 친구들하고 안 놀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피제이는 단짝인 아이작(건영이와 유경이의 호스트 친구이다)하고만 있으려고 하고 다 같이 놀 때 빠져있거나 표정이 아주 안 좋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호스트 프로그램이 우리가 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조금 더 친해지고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프로그램이기도 한데 내가 내 호스트 때문에 나의 경험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속상하고 화도 났다. 우리의 인솔자였던 룩형이 피제이에게 그런 얘기를 해보라고 조언해줬지만 결국 그 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는 딱히 없다. 피제이와 아이작이 놀러다니는 걸 따라다니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피제이와 아이작이 하도 붙어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와 도현이, 건영이, 유경이도 같이 다니게 되면서 6명이서 많이 다녔다. 이 친구들과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보고 새로 느낀 것들이 많았다. 자연, 분위기, 사람들, 건물, 아이들, 여러 가지, 다!




키니웨이에 있는 마지막 날에 우리와 교류하는 세인트 제임스 하이스쿨에서 문화공연과 체육대회를 했다. 문화공연은 가장 완벽했다. 체육대회도 가장 잘 됐다. 그리고 그날 밤 송별회를 했다. 많은 친구들이 울었고 나도 울 뻔했지만 참았다. 평소 같았으면 울었겠는데 그날 왠지 울기 싫었던 것 같다. 새벽에 밤 버스를 타고 마닐라로 향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호스트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호스트 어머님께서 나와 도현이를 한국에서 찾아온 두 명의 ‘아들(son)’이라고 표현하셨을 때의 밀려오는 감정이 여전하다. 코끝이 찡하다.

밤 버스를 타고 다시 마닐라로 돌아왔다. 마닐라 얘기는 별로 쓰고 싶지 않다. 나쁜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고, 싸움이 일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냥 마닐라는 생각하기 싫다. 간단하게 마닐라를 소개하자면, 담배를 펴지 않아도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게 담배를 펴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마스크 없이 다니기 힘들고, 사람보다 차가 먼저이고, 질서 따위 존재하지 않고, 소매치기 당할 수 있어서 항상 긴장을 놓치면 안 되는 그런 도시이다. 인간의 친환경적이지 못한 문명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마닐라 투어는 쇼핑도 제대로 못하고, 뭔가 둘러볼 시간도 부족해서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제 마닐라는 두 번 다시 가기 싫다.


나의 방학 한 달을 투자한 해통이 이제 다 끝났다. 후회라는 게 남아있지 않은 기분이라서 다행이다. 해통을 갔다 오면서 친구들도 더 많아졌고, 나에게 많은 기회들과 경험들의 문이 더 열린 것 같다. 해통으로 인해 마을의 소중함을 느꼈고, 사람을 만나는 것에 소중함,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여행의 소중함과 필요함을 느꼈다. 해통의 연장선? 으로 배낭여행을 계획해서 갈 예정이다. 나의 ‘여행’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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