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무엇을 다루는 학문입니까?
첫 수업에 아이들에게 묻는다.
‘역사란 무엇인가’
아이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면 다시 자세하게 묻는다.
“수학(數學)은 수를 다루는 학문이고 영어(英語)는 영미의 언어를 다루는 학문이고 국어(國語)는 우리나라 말은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러면 역사(歷史)는 무엇을 다루는 학문일까요?”
여기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과거의 사실’이라고 답한다.
정답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사실’을 다루는 학문은 많다.
‘지리학’이 그렇고 ‘생명과학’ 역시 그렇다.
'사회학'도 그러하며 그렇게 보면 사실상 ‘과거의 사실’을 다루지 않는 학문은 거의 없으며 ‘지구과학’이 다루는 과거의 사실의 범위는 ‘역사’가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다루는 과거 사실의 영역은 무엇일까?
(이 정도의 질문에 일부 반에서는 '인간'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나 대부분 잘 감지하지 못한다.}
바로 ‘사람’이다. 역사란 ‘사람’ 보다 정확하게는 ‘사람들의’ 보다 더 정확하게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학문이다.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과거 사실' 즉 ‘역사의 사실’이다.
역사는 과거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두 번째 질문에 들어간다.
교과서를 통해 배운 ‘과거의 사실’이라는 것은 진짜 사실일까요?”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라고 결론부터 이야기해주고 다음의 글을 같이 읽는다.
“
조지형 교수는 랑케와 카의 역사학을 다룬 그의 책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대학에서 여러 해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심각하게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학생들이 중등 역사 교과서에 실린 사실을 모두 명명백백(明明白白)한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준 것은 일차적으로 나와 같은 전문적인 역사가들의 잘못과 불찰 때문이다. 역사를 암기과목으로 전락시키고, 암기한 모든 ‘사실’들이 마치 과거에 실제 했었던 것처럼 말한 잘못. 역사를 알아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역사와 거리를 두고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탓이다.”
아이들은 수업 활동지에 제시된 이 글을 읽고 나서는 다소 혼란스러워 한다.
당연히 절대적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교과서의 내용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많은 아이들이 해보지 않았다. 해보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판단과 의심이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들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게 배워왔다.
<역사를 보는 눈>의 저자 호리고메 요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쩌면 역사란 스스로 문제를 느끼고 과거에 물음을 던지는 곳에서만 생겨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그런데 만일 앞서 필자가 한 말이 옳다면, 이제 독자 여러분의 뇌리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고개를 내밀게 될 것이다. 즉, 그렇다면 역사는 항상 그것을 쓰는 사람의 주관의 산물일 뿐 객관적인 역사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 혹은 역사는 항상 변화하고 유동하는 것일 뿐이며, 따라서 역사상의 진리는 기껏해야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진리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이러한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일단 절대로 객관적인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을 해두어야겠다.
이 책에서 호리고메 요조는 “일단 절대로 객관적인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을 했다.
역사는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것조차 생각해보지도 못한 아이들에게 나는 저명한 역사학자의 말을 빌어 "절대로 객관적인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릉 하며 첫수업을 시작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