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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학 Jul 16. 2020

청소년 미래역량

역량에 의문을 품는 것에 의문을 품는다


N잡러가 되고 가장 법인 대표다운 일을 한 것은 교육 소셜벤처와 함께 경기도 교사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미래역량>이라는 주제로 연수를 기획하고 강의를 한 것이다.


6월 27일.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



최근 몇 년간 내가 가장 집중했던 일은 <역량중심교육>이었다. 지식 중심 사회에서 역량 중심 사회로 발빠르게 변화해 나가는 시대에 기업과 대학은 그 속도에 맞추어 변하고 있는데 고등학교는 전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영리 법인을 만들고 그곳에서 했던 교육 프로그램의 목표는 청년 전문가와 청소년 전문가를 연결하여 구체적인 그들의 삶과 각자가 가진 직업의 구제적인 업무 역량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었다.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이 시도 교육청의 핵심 기조로 차츰 자리잡는 가운데, 교육청의 사람들은 그저 이것을 정책과 사업의 일환으로만 인식하고 있으며, 그간 진보적인 교육자로서 능력과 덕망을 보여왔던 일부 교육 전문가와 교사들은 이 '역량'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대학과 연계하여 입학사정관들에게 이러한 데이터를 보낸다.



이미 미국은 숫자로 기록된 성적표가 아니라 역량의 그래프로 나타낸 역량 중심 성적표를 활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학들의 변화의 속도도 기업만큼은 아니지만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에서의 추구하는 인재상의 핵심은 졸업 이후 사회의 성공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한양대의 연구자료 (정시 입학생이 기준선이다)


한양대의 최근 입학전형과 관련된 연구 자료를 보면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대학 진학 이후에도 월등함을 보여준다. 또하나 눈여겨 볼 것은 평점 평균과 함께 제시된 핵심역량의 요소인데 그것은 과거와 같이 지식력이라던가 이해력 등이 아닌 소통/창의/융합 역량이다. 어떤 분야에서는 고른 전형, 소위 저소득 계층, 국가 보훈자 자녀, 농어촌 대상자 등 상대적으로 학업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그 군이 정시로 입학한 학생보다 탁월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글과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능력과 기회의 공평을 이야기 하며 정시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 연구자료를 권하는 바이다. 저소득 계층의 기회의 확대와 성장의 측면에서 만이라도)


역량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가장 간단하게 다음 그림을 보여주면서 설명한다.

서강대 A&T의 대문

https://youtu.be/loma0BlJgFU

서강대 A&T 홍보영상



숙명여대는 몇 년전에 이미 앙트러프러너십(기업가 정신)이라는 전공이 개설되었다.


서강대 A&T 홈페이지 대문을 보면 'Learning by Doing' 이라고 명시 되어 있다. 이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볼수 있다. '배우고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면서 배운다.' 지식을 탐구하고 습득하고 이해하고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가를 하는 과정 자체가 즉 배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나라 진보교육 진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분들이 이 역량에 반대한다. 그 이유를 세가지로 줄여보자면


첫째,  교사들과 사회적 기반이 준비 되어 있지 못하다.

둘째, 지식을 외면하고 체험 혹은 활동 중심의 교육과정을 중시하면서 활동과 체험이 소모되고 있다. 철저한 지식 습득을 기반으로 역량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쉽게 망각되어버릴 활동과 체험에만 치중한다.

셋째, 역량은 기업에서 역할을 수행할 때 효율성과 탁월성의 끌어올리기 위한 개념이다. 그것이 교육으로 들어와 능력주의를 역량으로 포장하고 있다.


는 것이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사실 안해도 되는 말들이다.

교사들이 준비가 되어 있느냐 마느냐, 사회의 기반이 마련되어 있냐의 문제는 교육부와 교육청과 교사들의 문제이다.  


그리고 두번째의 문제의 경우 예전에 경기도 교육청을 휩쓸었던 '배움의 공동체'에서 같은 맥락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역량 중심 교육을 활동중심교육 혹은 체험 중심 교육으로 이해했다. 수행의 과정을 중요시 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대부분 공개할 결과물이 필수적인데 그것이 꼭 동적일 이유는 없다.


작가나 디자이너들이 지식과 이해력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공개할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동적이지 않으며 고립적이지도 않다.

면대면을 협업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수많은 유튜버들과 소통하고, sns 활동가들과 소통하고 협업하는 방식이 언어로 혹은 직접 대면으로 해야만 협업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미래 사회에서 최고의 역량을 가진 직업군으로 평가되는 디자이너(디자인 씽킹이라는 것이 어디로 부터 파생되었는지 알아보면 이해가 된다)의 작업 과정은 노트북 한대와 주변에 필요한 기기들을 사용하는 것이 다이기도 하다.(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는 건 안다) 그들은 결코 소란스럽게 활동을 한다거나 수행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협업과 소통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디자이너들은 소통과 협업에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혼자 무언가를 기획하면서 저 먼 세상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그것을 참고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피드백을 요청하고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무료로 호의를 가지고 피드백을 해주고 함께 완성의 과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시대이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수행-지식습득-성장- 수행-지식습득 등의 행위가 반복되어서 일어나는 것이다.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에서의 활동과 체험의 핵심은 이러한 과정에서의 아이들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지 지식을 배제하고 수행만을 이야기 하는 이분법적이 교육론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능력주의가 들어온 것이 문제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가장 큰 분노로 비판을 해주고 싶다.

지금 아이들을 고되고 힘들게 하는 이 지식 중심의 교육과정 그 자체가 산업혁명 이후 숙련공들을 만들어 내기 위한 기업의 능력주의가 교육의 가장 핵심이 된 극악한 상황인 것이다.


진로교육이라는 것은 아이들이 사회적인 역할을 해나가가는 과정이다.  창의성이 중요해 지면서 기업 문화는 점점 탈권위적이고, 일하는 방식은 유연해지고, 사내 복지가 창의성의 발현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가며 세계적인 기업들은 보다 인간다운 회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물론 노동의 유연화 문제가 있지만 여기서는...)


역량은 지식과 이해와 다르게 각 개인의 특성에 맞추어져 있으며 적용의 가능성도 개인 고유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매우 다양한 고용과 다양한 삶을 살아갈 기회를 제공해 준다.

도대체 기업의 능력주의가 학교로 들어왔다는 것이 비판의 요소가 되려면  지금의 중고등학교는 학문 탐구의 순수한 그 자체, 즉 산업 혁명 이전에 지식이 곧 권력이 되는 학문 탐구 순수 그 자체 시대의 교육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예전에 학교에 있을 때 그리고 심지어는 지금 대치동 컨설턴트로 학부모 대상 간담회를 할 때도 난 아이들에게 대학 진학과 연계하여 미래 역량을 핵심적이 요소로 이야기 한다.


대치동의 간담회를 기획할 때는 서연고, 의치한, 서카포 라는 말이 붙지 않으면 안된다. 무서운 동네다.

얼마전 서카포와 관련된 간담회를 하면서 학부모님들께 카이스트 교육목표를  보여주었다. 그것도 아직 전통적인 과명으로 남아있는 두 과의 교육목표를



학부모님들께 인간 중심 컴퓨팅이 그리고 소셜 컴퓨팅이 무슨 개념인지 아시냐고 물었다.

그리고 가장 험학한 것을 다룰 것 같은 기계공학과의 목표가 왜 <인간중심 복지사회 구현하는 사회적 가치 창조>일까도 물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다만 좀 더 인간적으로 아름답게 변하기를 반란다.

아직은 비인간적인 구시대의 자본주의가 대세이지만  인간적이고 아름답게 변화해가는 과정의 틈새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갔으면 한다.


그러기 위한 것이 나에게는 바로 '역량'이다.


아직 안된다고 부족하다고 못한다고 그러지 말자. 부작용이 있다고도 그러지 말자.

그냥 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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