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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학 Apr 02. 2016

10분 수업

수업이 없다!!


담임인데 수업이 없다.(2학기 수업만 있다)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학점제 중심의 학기 이수제 방식의 교육운영을 하는 이우학교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나의 경우 학교 교육 이념에 따라 고3에서 필수 지정한  <환경과 녹색성장> (과목명은 정말 환경적이지 못한)의 수업을 전담하고 있어 1학기에는 고3 외에 다른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수업을 통해 교사와 학생 간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맺어지는데 담임인데도 수업이 없는 상황은 너무나 치명적이다. 특히 나같이 수업을 잘하는 참교사에게는...^^:


역사교사로 역사 수업 외에 아이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다. 그래서 <세상 읽기>라는 과목명으로 방과 후 특기적성 개설하였지만, 그래도 또 우리 반 아이들하고 세상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종례를 짧게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수업이 없으니 조회 시간에 특별히 할 것이 없는 날 <10분 수업>을 하겠다고 제안을 했다. '짧은 종례'에 혹했는지 아니면 수업이 없는 담임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 아무튼 아이들은 그 제안을 아주 쉽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1학년 4반에서는 아침 조회 시간에 <10분 수업>이라는 것이 간간이 이루어졌다.


삶의 조건 속에서 함께 하는 교육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 가장 길러주고 싶은 역량은 '시대를 통찰하는 능력'이다. 물론 그것이 '시대의 정의감'으로까지 나아간다면 참 좋겠지만 우선은 자신의 삶의 기반이 되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한 통찰력과 시대의 변화와 상황을 읽어내는 인식 능력을 키워주고 싶었다. 역사라는 과거의 삶을 가르치면서도 가장 강조했던 것은 '현재 우리들의 삶의 정체성' 이었다. 그 정체성을 정확히 분석하고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을 바탕으로 지금의 우리의 삶의 모습과 이 시대의 사람들의 삶의 형성 과정을 통찰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러한 바램은 '과거의 사람들의 삶'을 다루어야 하는 역사의 한계성을 넘어 지금의 사회적 현상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한 달 간의 짧은 기간을 함께 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보았다.


학부모 직업 조사를 하다가


학기 초. 아이들의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학부모 직업 조사를 했다. 이우학교는 아이들의 진로교육 과정에서 학부모 자원을 적극 활용하고 있어 비교적 구체적으로 조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가사일을 전담하는 어머님들의 직업을 모든 아이들이 '가정주부'라고 기재하는 현상을 경험하고 어머님들의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한 가장 적합한 표현이 무엇일까? 아이들은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해 얼마큼 인식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첫 <10분 수업>은 '가사노동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만들어 보았다.



https://youtu.be/05weVK8G-_I


알파고가 던져 준 충격


3월 중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었을 것이다. 소위 우주의 원소보다 많다는 바둑의 경우의 수에 맞서 인간의 직관의 한계를 넘어서고 무려 4대 1로 이긴 알파고의 성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지금은 사그라들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계의 발달에 따른 공포'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과연 기계의 발달은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이라는 고민 속에 두 번째 10분 수업은 알파고의 이야기를 다루어보았다.



착한 아이들의 치명적 학습 태도


올해가 조금 더 지난 후에 '속았어'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한 달간 아이들에 대한 평 중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너무 착해서 걱정돼'라는 말이었다. 아이들의 그 착함이 한 달간의 경험 속에서 우려되는 학습 태도로 나타났다. 아이들의 참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노력한다. 아마도 주변의 기대를 가장 최우선에 두는 그 '착한 삶의 태도'로 부터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싶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학생으로서 당연한 것인데 이제 이우고의 고1의 시작에서 각자 이우고에 온 목적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서' 만은 아닐 텐데 벌써 영수 위주로 아이들의 학습 부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과 노력하는 태도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고 칭찬해 주어야 할 것이지만 '그것에 몰두하는 목적의 전망'이,  다양한 배움이 존재하는 학교에서 '영수에 몰두하는 현상'이,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지만 결국 그것이 당연히 모두에게는 잘되지 않는 그래서 생기는 '학습에 대한 부담'이 한 달간의 아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너무나도 자주 경험되었다.(아직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 나의 오판일 수 있다는 전제를 둔다) 그래서 아이들과 '학습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브런치에 학습과 관련된 그를 쓰는 김태훈 님의 텍스트를 인용

아마도 '청년실업' '헬조선 담론' '취업 공포'가 벌써 이 아이들을 감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소 위험하고 무책임할 수도 있으나 그래도 자신의 배움을 기반으로 다양한 삶의 수단을 찾고 있는 청년들의 삶들을 이야기해주고 수업을 마쳤다. 정말 우리 아이들이 '평생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삶의 선택'으로서 배움에 몰두했으면 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학습의 동기이며 험난하고 고단한 영수 학습의 과정의 목표이자 그것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으면 한다. 다소 비겁하다고 해야 되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학습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명분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너무 무책임하게 이야기를 한 건 아닌가 싶어서 물론 영수를 잘하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첨언을 하고 말았다. ^^:  



이렇게 빡빡한 3월의 일정 속에서 그나마 잠시 시간을 내서 세 번의 <10분 수업>을 해보았다.

아이들과 참 하고 싶은 게 많다. 다만 나의 욕심이 너무 앞서 나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어쨌든 올 한해 이 아이들을 삐뚤어지게 할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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