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브런치 글 업로드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 대규모 확산이 발생했다. 오늘 큰 아이 학교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개학 연기'라는 공지가 공식적으로 내려왔고(지난 글의 마지막 문단이 현실이 되었다), 9월 자유를 꿈꾸던 내 설레발 덕에 나는 오늘 밤 뿌리째 흔들리는 기분이다. 마침 태풍도 북상하고 있고, 이대로 뽑혀 날아가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엔 조금, 무거운 몸이기는 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6시가 되기도 전에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왔다. 큰 대접에 밥을 수북이 퍼 친정엄마가 싸준 고구마 줄기 볶음을 올렸다. 뭔가 허전해서 계란 프라이를 반숙으로 부쳤다. 그것을 한데 섞어 단숨에,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그리고선 아이들에게 먹일 밥을 더 퍼왔다. 만사가 귀찮아 두부 반모를 겨우 지졌고 밥은 김으로 말았다. 아이들에게 주려고 싸고 있던 밥을 한 개, 두 개, 집어먹었다. 그게 세 개, 네 개가 되고...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내게 잠시 동안의 외출을 제안했다. 돌아보면 내가 봐도 나는 반쯤 미쳤거나 걸신이 들린 사람 같았다.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내게 휘몰아치던 순간이었다. 나는 정말 배가 고팠던 걸까?
밖으로 나와 곧장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운전석에 올라타고 나니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이 곧 참을 수 없어져 아무 노래나 틀었다. 그리곤 여기저기 카톡을 날렸다. 나 좀 봐주세요. 내가 여기에 있어요. 속이 텅 빈 채로 여기에.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저기, 내가 여기에 있다고요.
요란한 태풍 소식과 연일 확진자가 나왔다는 문자 알림은 나를 오갈 데 없게 만들었다. 도망 나와도 갈 곳이 없는 현실. 내가 쉴 곳은 자동차 안. 고작. 혹은 우리 집 안방 화장실. 아이들 소리에 지칠 때면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바닥에 앉아있곤 한다. 고작, 화장실. 내가 쉴 곳이란.
며칠 전 강원도 한 달 살기를 알아봤다. 바이러스가 퍼져가는 이 대도시에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만 같아서. 재택근무하는 남편을 배려해 웬만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려고 하는데, 조심해서 다니는 것도 지쳤다. 갈 곳이 없다. 코로나는 나를 물리적으로 가두는 것도 모자라 심리적으로도 가두기 시작했다. 이러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이것저것 따지고 보니 한 달은 무리고, 열흘 정도는 강원도에 머무를 여건이 된다. 눈여겨봤던 시골집을 예약했다.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가면 숨통이 좀 트이겠지. 아이들이 바다를 무척 좋아하니까. 음, 그런데 나는? 나도 좀 괜찮아질까? 거기서도 이어질 삼시 세 끼와 남편의 재택근무.... 장소만 바뀐 채로 똑같이 이어질 일상을 생각하니 아차 싶었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걱정들... 서울에서 온 우리를 주민들이 꺼려하지는 않을는지. 이러다 혹시, 우리가 코로나를 옮기게 되는 건 아닐지. 가뜩이나 노인 인구가 많은 시골마을에 우리가 죽음의 씨앗을 뿌려두고 오면 어쩌나.
하지만 진짜 나를 망설이게 하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비난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굳이 이런 시기에, 감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어린 두 자녀까지 데리고, 평화로운 마을을 휘젓고 와야 하느냐는 비난.
전염병은 감염된 사람들의 신체적 고통 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을 아우른다는 것을 체험으로 배우는 중이다. 언제쯤 끝이 날까. 끝이 있기는 한걸까?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그래요,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페스트, 알베르 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