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잘 못하는 편이다. 술 종류에 관계없이, 한 잔만 들어가도 이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두 잔이 들어가면 기분 좋게 취한다. 그 날의 대화가 유난히 맛있다거나, 귀에 휘감기는 음악이 내 마음을 녹인다면 세 잔 까지도 들어가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술은 잘 못하지만 술자리는 좋아한다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다. 몇 잔 마시지도 못하는 거, 값이 좀 나가더라도 이왕이면 좋은 술을 마시자고 꾀기도 부담스럽지 않을 테고, 붕붕 뜬 기분으로 떠드는 대화시간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이런 유의 사람들은 공부는 못하지만 독서실을 좋아한다거나, 노래는 못하지만 노래방을 좋아한다는 사람들보다는 더 높은 비율로 만날 수 있으니 내게 다행인 일이다.
술 약속이 잡힌 날의 아침은 눈을 뜨는 순간이 괴롭지가 않다. 신랑에게는 더욱 친절해지고, 아이들에게는 관대 해지는 그런 날. 며칠 전, ‘이번 주 금요일 저녁, 시간 어때요?’라는 톡으로 시작된 흥겨움이 최고조를 달린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난 더 행복해지겠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경험을 통해 완벽히 이해한다. 술 약속이 저녁 8시로 잡혀 있으면 나는 아침 7시부터 이미 행복해지기 시작하니까.
약속 장소에 나갈 때는 평소 입는 편안한 옷 대신 멋지다고 생각하는 옷을 꺼내 걸친다. 술자리를 대하는 나의 최소한의 예의. 마침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겨 듣는 장르의 음악이 나오는 바에 들어서면 황홀한 기분이다. “좋다, 좋다...”를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와인을 마실지, 하이볼을 마실지 결정한 뒤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 앉아 있자면 으레 누군가 입을 뗀다. “그래서 어떻게 지냈어?” 라든가, “요즘 무슨 생각하며 살아요?” 라든가.
“술 취하지 말라”라는 성경에 나온 말씀을 지키지 못하면서도, 일요일 아침이면 사뭇 경건한 몸가짐으로 온 가족을 이끌고 교회로 향하는 나는 반전 있는 여자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 새로운 가정을 꾸린 지금 까지도 종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술 취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양심상 취하기 직전까지만 마시고자 노력하지만, 결국엔 살짝 취해버리고 마는 것을 피할 재간이 없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성경 말씀을 비추어 말하자면, 내게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낮은 사양의 간을 주신 건 다름 아닌 바로 그분 이시니, 나는 조금, 아니 많이 억울한 기분이다.
종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솔직히 말하면 난 길을 잃은 지 수년째다.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무신론과 유신론 사이에서. 모든 이론이 너무나 그럴듯해서, 어느 쪽으로든 엉덩이를 붙이질 못하고 계속 서성이는 중이다. 게다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정치/사회적 이념이 나의 그것과는 너무나 상반되어서 기독교 안에서의 내가 이물질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받은 조기교육과 반복학습은 생각보다 끈덕진 것이어서, 아이가 아프게 태어난 사실을 알게 된 출산 직후의 순간, 그러니까 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력히 들었던 그런 날에도 나는 감히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을 꺼내면, 더 큰 불행이 나를 삼켜버리게 될까 봐, 신이 나를 벌 할까 봐 심장이 쫄렸다. 하나님을 완전히 믿지는 못하면서도 어찌 되었든 믿긴 믿는 아이러니한 상태. 이와 같은 지질한 이유로 나는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간다.
집 앞에 있는 교회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술 한두 잔 하고 들어오는 밤이면 –나는 정말이지 딱 한두 잔 정도만 마신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혹시 교인 중 누군가가 나를 볼까 불안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물론 기도도 잊지 않는다. ‘하나님,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아무도 마주치지 않게 해 주세요!’ 뭐, 누가 본다고 무슨 사달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교인으로서 최소한의 체면은 지켜야 하지 않겠나. 게다가 술 약속은 보통 불타는 금요일 밤에 잡히기 마련인데, 문제는 대부분의 교회에는 매주 금요일 철야예배가 있다는 거다. 내가 다니는 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금요일 밤에는 동네에서 교인들과 마주칠 위험이 다분하다. 뭐,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금요일 밤 나의 귀가시간은 어쩔 수 없이 더 늦게 늦춰진다. 모두가 잠든 시간으로. 정말 어쩔 수 없는 노릇!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나는 왜 술자리를 좋아하는 걸까? 술이 잘 받는 체질도 아니고, 음주 후엔 일말의 죄책감까지 느끼면서. 단순히 사람들과 만나 수다 떠는 것이 좋아서,라고 하기엔 커피를 홀짝 거리며 하기에도 부족함 없는 것이 바로 수다 아닌가?
하지만 커피를 사이에 둔 대화는 어쩐지 좀 아쉽다. 너무 일상적이고 단조로운 느낌이랄까. 이에 반해 술자리는 그 자체가 일탈로 다가온다. 약속을 잡을 때부터 이뤄진 오늘 좀 흐트러져 보겠다는 무언의 합의, 어두운 밤이 주는 괜한 해방감, 술이 주는 취기. 이 삼박자가 갖춰지면, 딱딱했던 마음도 말랑말랑해지면서 솔직한 나를 드러내기가 어색하지 않아 지는 거다. 나는 이런 허심탄회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다. 이 만남이 끝나면 내가 할 일 이라곤 집으로 가서 씻고 자는 게 전부라는, 뒤에 할 일이 쌓여있지 않다는 개운한 기분까지.
물론 술이 매개가 되지 않고는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술 없이도 진지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으니까. 하지만 정말이지 술은 대화에 맛과 멋을 더해주는 고명과 같아서,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과의 자리에서든 알고 지낸 지 오래인 친구나 지인들과의 자리에서든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시간을 통해서만 쌓아 올릴 수 있을 법한 친밀함은 종종 술자리에서 압축 파일 형태로 다운로드 받게 되기도 하고, 가깝고 익숙한 사이라는 이유로 평소 꺼내기 어려웠던 속사정은 술에 타서 내놓기 좋다. 그뿐 아니다. 주로 활동하는 낮 시간이 아닌 밤 시간의 만남은 그 자체로 관계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누구나 다 안다는 다양한 술 활용팁!
술이 이토록 쓸모 있어서, 나는 오늘도 밤 외출을 궁리 중이다. 저랑 술 한잔하실 분?
(본 글은 작년 이맘때, 코로나가 세상을 휘감기 전에 쓴 글임을 밝힙니다. 1년 동안 잠자고 있던 글을 읽고는 놀랐네요. 내가 이렇게나 자유롭고 경쾌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