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by 테레사

나는 왜 글쓰기 수업까지 들어가며 쓰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걸까?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글쓰기가 필요한 용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디서 인정해 줄 만한 공인점수나 수료증 하나 남지 않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가며 과제를 하고 있다. 합리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우리 오빠 같은 사람이 보면 난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꼭 분명한 목적이 있는 일만 하고 살라는 법 있나?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있는 거지.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입소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무얼 하며 내 시간을 보낼지 궁리하느라 잠을 설쳤다. 여유 시간에 그동안 굳어버린 내 몸과 머리를 풀고 싶었다. 계획했던 일 중 하나가 글쓰기 수업을 들어보는 것이었다. 참석 가능한 시간에 멀지 않은 장소에서 열리는 수업을 찾아 지원했다. 마음이 가는 일을 덜컥 저질렀을 뿐, 내가 왜 이 수업을 듣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수업 첫날, 어떻게 오시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던 것 같은데 뭐라고 대답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라고 했던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라고 했던가. 분명한 건 그저 쓰고 싶다는 사실 뿐이었다.

처음에는 글을 쓰기에 앞서 준비과정이 필요한 줄 알았다. 구조를 짠다던가, 형식을 정한다거나 하는. 그런데 주제를 정하고 난 후에는 일단 생각나는 대로 무작정 쓰면 되는 거였다. 무턱대고 써 내려간 글은 당연히 엉망진창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어색한 문장도 많다. 아름답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나를 사로잡은 김연수 작가조차도 자신의 초고를 ‘토고’라고 표현한다. “토가 나올 것 같은 원고”를 줄인 말이다. 술술 적어내려 간 글이 오탈자를 보는 정도의 교정을 거쳐 책으로 출간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소설가의 주된 일이라고 말하는 그에 따르면 글쓰기는 쓰는 일이라기보다는 고치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이다.


나의 글쓰기도 그렇다. 초고를 노트북 화면에 띄어놓고 나면 그때부터 진짜가 시작된다. 다시 읽고, 고치고, 빼고, 추가하고,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퇴고할 때 내 뇌는 적어도 평소의 세배 정도 더 많은 일을 하는 듯하다. 기억저장소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에피소드를 찾아내느라 바쁘게 돌아간다. 그 후엔 행동과 감정 변화의 원인을 파고든다. 그 의미에 걸맞은 정확한 단어를 고르고 괜찮은 비유나 재미있는 표현을 써보기도 한다. 그러다 예상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정말 기특한 일이다. 가사와 육아로 점철된 단순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더 고차원적인 활동을 하는,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이토록 온전히 집중한 시절이 있었던가? 언제나 이런저런 일로 바쁘거나, 우울하거나, 행복하거나, 분노하거나, 지쳤지만 그 감정이나 사건들을 유심히 들여다본 일은 드물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고통이나 우울감이 밀려올 때는 오히려 나를 더 잘 돌봤다. 그러나 보다 일상적이고 소소하게 여겨지는 감정들은 홀대했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상투어로 나를 쉽게 설명해 버렸다. 그런 날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점차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깊이 생각하며 살지 않으니 오롯이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조금 달라졌다. ‘깊이 생각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나를 향한 집중력이 자라난 덕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전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공들여 작성한 글을 읽다 보면 나와 더 친해진 기분도 든다. 모호했던 속마음이 제법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통과했던 해프닝들은 글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신선한 경험이다. 때로는 나의 새삼스러운 면면들이 드러나기도 하고 내가 좀 더 또렷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착각마저 든다. 솔직하고, 진지하고,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람.


안타깝게도 완성도 면에서 보면 결과물이 썩 훌륭하진 않다. 하지만 애초에 훌륭한 글을 쓰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나는 다만, 다음 글이 이번 글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이것이 결코 소박한 바람이 아니라는 것은 몇 번의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 글을 쓰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수고가 생각보다 엄청나다. 글의 주제나,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인지 아닌지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한다.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매번 부족한 글을 완성할 용기를 갖는 나를 칭찬하고 싶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이제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사라져 가는 나를 붙잡고 싶어서 쓴다. 나를 설명하고 긍정하기 위해 쓴다. 가능하면 오래 동안 글쓰기를 지속하고 싶다. 뭐든 쉽게 시작하고 쉽게 끝내는 내가, 어떻게 하면 꾸준한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다.

(2020.01)





쓰기를 막 시작했을 때의 글.

곧 시작되는 글쓰기 모임, "보통의 글쓰기" 멤버들을 위해 이 글을 업로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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