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알못의 음악사랑
나는 보컬이 들어가지 않은 재즈 트리오 합주를 즐겨 듣는다. 한 가지 이상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사람의 목소리, 그러니까 가사가 있는 곡은 거슬릴 때가 많다. 나도 모르게 가사에 집중하게 되고, 가사는 시고, 시는 자꾸 무언갈 혹은 누군갈 떠오르게 하고... 그러다 보면 하던 일을 계속해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악기로만 꽉 채워진 재즈 트리오가 내 일상의 배경음악으론 딱이다. 경쾌한 피아노와 무게감을 잡아주는 베이스, 거기에 리듬감을 실어주는 드럼까지... 이 조합은 내게 완벽하다. 언제, 어디서 들어도 좋지만 특히 한 겨울에 듣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12월이 되기도 전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 가득한 재즈 트리오의 연주를 들으며 연말을 마중할 만큼. 그 음악들은 설레고 따뜻하고 즐거운 공기로 공간을 가득 채워준다.
내가 재즈에 매력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뮤지션들의 연주 자체가 음악의 중심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즉흥연주가 진행되는 구간에선 다른 일을 하다가도 멈칫, 집중하게 될 때가 있다. 한 인간이 만들어내는 무형의 예술을 황송히 감상하노라면 영혼이 즐거워지는 느낌이 든다. 연주하는 사람의 스킬과 표현력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는 자유로운 음악 장르. 어쩌면 나는 그 자유로움에 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계속 새롭게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주 마음에 든다. 언제나 똑같을 수 없다는 점 까지도.
재즈를 좋아하게 된 것은 보사노바를 즐겨 들으면서부터다. 호주의 한 어학원에서, 한국인만큼 많았던 브라질 친구들 중 하나가 이어폰 하나를 나눠주던 날, 나는 단번에 보사노바와 사랑에 빠졌다. 20년 가까이 한국 가요와 종교음악만 듣고 살아왔던 나에게 보사노바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특유의 나른한 선율과 리듬도 좋았지만, 어떻게 그 나른함이 흥겨움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자꾸만 더 듣고 싶어 졌다.
“가자, CD 사러. 네가 추천해줘.”
나는 그날 친구가 추천해준 보사노바 CD를 샀다(그렇다. 그때 나는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다.). 포르투갈어로 노래하는 보컬은 다른 악기들과 잘 어우러지는 또 다른 악기 소리 같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내가 그동안 들어왔던 보컬과는 차원이 다른 음색과 창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음악을 점령하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가 듣기에 더없이 편안했다.
보사노바는 여름의 해변에서 듣기 딱 좋은 음악이다. 혹시라도 휴가철의 해운대 해수욕장을 상상하지는 마시길(비수기의 해운대는 정말 아름답습니다만). 그보단 해안도로를 달리다 우연히 발견한, 한적한 해변이 더 적당하겠다. 그런 해변에서 듣는 'Wave'란, 천국. 그 천국은 나를 게을러지고 싶게 만들다가... 방탕해지고 싶게 만든다. 나를 탁 놓고 그 무엇에든 취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든달까. 그런 순간엔 배경으로 물러나 있던 음악이 중앙에 자리를 잡는다. 들리는 음악으로서가 아니라 들어지는 음악으로서.
보사노바가 삼바에 재즈가 가미된 것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삼바를 찾아들어보니 너무 현란했고, 재즈는 보사노바만큼 좋았다. 내겐 너무 대담하게 느껴지는 색소폰 소리를 제외하면. 그 시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음악적 취향이라는 것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점 중 한 가지는 이런 것이 아닐까. 젊은 날의 탐색과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엉덩이 붙일 내 취향이 생긴다는 것.
음악에 대해 할 말이 A4용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많이 떠들어 대는 것에 비해 내게 음악적 지식은 없다. 심지어 추천할만한 뮤지션이나 곡에 대한 가벼운 질문을 들었을 때마저도 당황하는데, 듣기는 좋아하지만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재즈나 보사노바는 해외 뮤지션이 많은데, 외국인이랑 살면서도 외국인 이름은 참 안 외워지고 외국어로 된 곡명도 마찬가지다. 결국 음악에 관해서라면 두리뭉실한 감상과 그에 얽힌 작은 사연들 밖에는 쓸 수 있는 말이 없다.
무엇을 좋아하면 자연스레 그것에 대해 잘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또 다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철학과를 선택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야, 좋아하는 걸 부전공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야. 네가 잘하는 걸 선택하는 거지. 학점, 학점이 잘 나오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 좋아하는 건 그냥 즐겨. 좋아한답시고 철학 공부하다 얻는 건 철학이 싫어지는 거뿐일 거다.”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일리 있는 말이다. 좋으면 좋은 대로, 잘 모르는 채로, 그냥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 다지만, 모르는 만큼은 용감해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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