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라는 글쓰기 모임 주제 아래에서의 주절거림

by 테레사

나는 여자라서 행복한가? 모르겠다. 나는 내 삶이 대체로 행복하다고 느끼기는 하는데 그게 여자라서 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주변의 사람들 때문이다. 나에겐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많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 영리하고 재미있는 사람들도. 여자라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걸까? 남자들에게도 이런 관계가 당연히 있겠지? 그들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인식할까? 어떤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다고 느낄까? 궁금해진다.


여자라서 행복했던 순간은?이라고 기간을 특정하여 묻는다면 답은 분명하다. 임신기간. 뱃속에 작은 인간을 품고 있었던 시절, 나는 동그랗게 부푼 내 배와 같이 모든 것이 풍족하다고 느꼈다. 무언가를 그토록 기대하면서도 두려워한 적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여자라서 어디에 갇힌 기분은 자주 든다. 가정에. 동굴 같은 우리 집에.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맞벌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의 삶이 말 그대로 지옥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모두의 평화를 위해. 그때는 이것이 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온전한 나의 선택이었을까? 엄마와 아빠가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조부모의 희생 없이, 아이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자랄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는 걸까?


여자라서 외로웠던 순간도 있었다. 시험관 시술을 할 때. 남녀가 함께 아이를 갖는 것 이라고들 하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시술 기간 동안 남편이 하는 일이 너무 없었다. 정자를 제공하는 일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그렇다고 해서 남편을 원망한다거나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런 마음이 든다는 여성들도 있다는데 그 마음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생리구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을. 나는 다만, 당혹스러웠고 외로웠다. 자궁 조영술을 할 때, 배에 스스로 호르몬 주사를 놓아야 할 때(나는 도저히 못하겠어서 매일같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주말에는 전직 간호사인 엄마가 놔주셨다), 주사 덕에 과배란 된 난자를 채취할 때, 수정란을 이식할 때, 질 초음파를 볼 때(난임시술 시 질 초음파는 정말 수십 번을 봐야 한다. 당시 그것은 나의 일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마다.... 그러니까 매 순간 외로웠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내 몸을 들들 볶아야 하는 것이 영 거북했다. 진짜 내가 아이를 원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내가 이 정도로, 원하는 것인가? 이 모든 과정을 기꺼이 겪어내어야 할 정도로? 하지만 임신과 함께 이 모든 의심은 사라졌다. 나는 아이를 원했던 것이 확실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갖기를 정말 잘했다.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처럼 여자들에게 임신/출산 경험이란 무용담이 되어버린다. 남들 다 하는 건데도 개인적으로는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임신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 것 같아 무안해서 덧붙이는 말.)


여자라서 부당하다고 느꼈던 자잘하지만 분명하게 남아있는 이야기들은 생략하겠다. 누군가에게는 예민함으로 혹은 피해의식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그렇게 오해받는 것도 싫고 그 오해 때문에 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도 싫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여성은 귀속되고 통제되어 왔으며 하대 받아왔다는 것. 이런 문화나 인식은 공기같이 퍼져 있다는 것.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좋은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는 사람(나를 포함ㅎ)이라 할지라도 여성 혐오를 저도 모르게 저지른다는 것. 이것은 하룻밤 사이에 교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하지만 세상은 분명히 바뀌고 있다는 것. 이 마지막 '것'때문에 발 뻗고 잘 수 있겠다. 음... 근데... 여성 혐오가 멈춰지기 전에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멸망해버릴지도 모르겠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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