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셋방살이를 한 적이 없다. 그들의 신혼집은 그들 명의의, 무려 이제 갓 새로 지어 올린 집이었다. 아빠가 집을 지어 파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내 집이 있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부모 아래에서 나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부유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먹고 싶은 것 다 먹을 수 있고,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선물을 가질 수 있는 정도의 행운. 딱 그 정도의 행운을 누리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돈에 딱히 쪼들려 본 적이 별로 없다. 대학시절에는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까지 더해 넉넉한 생활을 했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좀 더 넉넉해졌다. 높은 연봉을 받았던 것은 아니고, 돈 쓸 데가 없었다.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하루 두 끼를 해결했으니까(결혼 후 주거비에 드는 돈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활비 통장 잔고가 0을 찍곤 하던 시기가 잠시 있기는 했지만, 그때도 뭐, 다른 저축계좌에서 이체해오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살아온 결과 나는 돈을 쉽게 쓰는 편이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큰 고민 없이 사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때로 과감한 지출을 감행한다. 그렇다고 사치스럽지는 않다. 나는 내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게 소비한다. 이런 소비경향은 아무래도 부모님께 이어받은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현재 여유롭게 사시는 편이지만 사치나 허영이 없으시다. 필요하면 사고, 마음에 들면 사지만, 과시하려고 사는 물건은 없다. 나도 딱 그런 것 같다.
지난해 전세 재계약을 한 뒤로 ‘분수에 맞게 소비하는 습관’을 ‘절약하는 습관’으로 바꿀 필요를 느꼈다. 치솟는 부동산 시세를 실감하니 내 집이 없다는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무력감이 들었다. 집값은 이제 내 소비습관을 바꾸는 정도로 따라잡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정책을 비판하는 시간에도, 다주택자를 시기하는 시간에도, 아파트 가격은 뛰었다. 따라잡을 수 없는 선두를 쫓을 바에야 느긋하게 산책하듯 걷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는 편이 덜 자존심 상했다. 나는 지금과 같은 자유로운 소비생활을 포기 않기로 했다.
어느 날 남편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이놈의 세살이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러다간 2년마다 더 많은 돈을 대출받아야 하는 상황이 감당되지 않아 점차 좁은 집으로, 외각으로 밀려날 일이 뻔하다. 결론은 로또였다. 로또만이 답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매주 로또를 산다. 당첨자 발표가 있는 토요일 저녁이면 각자 당첨번호를 확인하고 조용히 복권을 구겨버리는 일. 이 끝을 모르는 일을 반복한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사실 나는 내 분수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나는 분수에 넘치는 지출을 하며 살고 있다. 네 식구 뉘일 보금자리 하나 소유하고 있지 않는 주제에, 은행 대출에 아슬아슬 얹혀사는 주제에, 전셋값 상승폭과 대출한도 사이에서 벌벌 떠는 주제에, 너무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과거의 넉넉했던 기억에서 벗어나 지금의 내 분수를 직면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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