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1995)를 보고

by 테레사

*본 글은 영화 <공각기동대>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읽지 마세요. 그리고 저는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 편에 속하는 영알못임을 밝힙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 고린도전서 13:12 전반부


사이보그 쿠사나기가 실존의 문제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정체성 혼란으로 괴로워할 때, 어떤 계시처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한 이 장면은 내가 뽑는 명장면으로, 쿠사나기가 어떤 깨달음, 어떤 희망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희미한 목소리는 '지금은 흐릿해 보이는 너라는 존재가 언젠가는 분명히 보일 것'이라고 일러준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저 성경구절의 뒷부분은 이러하다.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 고린도전서 13:12 후반부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지금은 어지러이 널린 퍼즐 조각들을 보고 있다면, 언젠가는 완성된 퍼즐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 이 예언은 결국 이루어진다. 쿠사나기는 완성된 퍼즐을 보게 된다. 완성된 퍼즐 그 자체가 된다. 하지만 곧 그 퍼즐을 뒤엎는다. 퍼즐을 뒤엎고 또 다른 사이보그인 인형사와 융합을 이루며 새로운 차원의 자아로 상위 이동하는 쿠사나기. 그렇게 더 광대한 네트를 갖는 도약을 이루었을 때, 그는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주었던 성경구절의 앞 절을 읊는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 고린도전서 13:11


과거의 나도, 인형사도 없고,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고백. 쿠사나기는 단순히 업그레이드된 존재가 아니다. 새로운 이름이 주어져야 할, 완전히 다른 존재다. 마치 인간이 생식하여 낳은 자식처럼.

이 영화에 고린도전서가 중요한 단서로 인용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고린도전서 13장은 기독교인 사이에서 '사랑장'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고린도전서 13:4~7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고린도전서 13:13


비기독교인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구절이다. 정체성에 대한 번뇌로부터 쿠사나기를 구원해 준 성경구절이 사실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는 장의 일부라는 것은 좀 억지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마침 떠오르는 대사가 있다. 도망친 인형사를 뒤쫓던 정부 관계자(외무성의 6과 소속으로 인형사는 사실 6 과가 어떤 목적에 의해 만들어 낸 국가기밀의 사이보그다)가 어느 모로 보나 도피처로는 적당해 보이지 않는 9과(외무성의 또 다른 한 부서. 쿠사나기가 9과 소속이다) 건물로 도망간 인형사를 의아해할 때, AI 전문가가 하는 말.


"그건 그렇다 해도 인형사 녀석, 하필이면 왜 9과 따위로 달아난 거지?"
"그가 하는 일이오. 우리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짝사랑의 상대라도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군."

정부 관계자는 우스갯소리로 여기고 지나가지만 AI전문가의 표정은 미심쩍다.


쿠사나기가 왜 하필 나와 융합하고 싶은 거냐고 인형사에게 물었을 때, 그는 "우리들은 닮았다"라고 대답한다. 닮아서 끌렸다는 것. 이러한 끌림을 감히 사랑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까? 혹시 고린도전서 13장의 인용은 이런 의미에서 의도된 것이 아닐까?


"융합 후의 새로운 너는 달라질 때마다 나의 변종을 네트에 흘리겠지. 인간이 유전자를 남기듯이... 그리고 나도 죽음을 얻게 된다."

자신과 닮은 존재와 융합하여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고 그 존재가 계속해서 새로운 탄생을 이어가며 자신의 변종을 퍼트릴 것을 예상하는 인형사. 어째 인간의 종족번식의 본능이 겹쳐진다. 비혼 주의와 딩크족의 증가로 이 본능이라는 것도 신화인 것으로 드러나고는 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인형사에게 설득당한 기분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사이보그도 언젠가 자아를 갖고, 의지를 갖고,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에 현실감이 더해진다. 두려운가? 이게 두려워할 일인가? 우리는 왜 두려운가? 왜냐하면, 우리는 제 잘난 맛에 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지구 상 최상위 종으로 보고 있다. 인간이 지구 위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컨트롤할 수 있다는, 아니, 인간만이 그 일을 독점해야 한다는 착각과 교만을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불편함과 위기감을 느낀다. 그래서 일부는 애써 이 스토리를 허무맹랑한 것으로 치부하려 든다.


멀리 미래에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간의 이러한 착각과 교만은 이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인간은 자기들이 마치 지구의 주인인 양 지구 위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자연과 동물의 권리를 무시한 채, 인간의 편의에 맞게 모든 것을 조작한다. 더 우스운 것은 바로 그것이 인간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각기동대>에서의 인간들이 그러하듯이. 인간이 아무리 다른 종들보다 더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과 함께 지구 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생물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인간 스스로를 구할 열쇠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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