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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Apr 16. 2022

마스크에 대하여

『페스트』, 알베르 카뮈

타루는 (...) 벽장을 열고 살균 소독기에서 흡수성 가제 마스크 두 개를 꺼내더니 랑베르에게 하나를 주면서 쓰라고 했다. 신문기자는 이것이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타루는 그렇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준다고 대답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코로나가 시작되고 다니던 필라테스를 그만뒀다. 대신 집에서 5분이면 다다를 수 있는 북한산 둘레길에 가기 시작했다. 산책이라고 부를만한 짧은 산행이었다. 내가 다니던 코스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 애매한 시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전 9시. 정상까지 가려는 사람들은 이미 출발했을 시간이었고, 하산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드문 드문 마주치는 등산객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산에서 마스크라니. 숨이 차는 것도 문제지만 이 좋은 산 공기를 마시지 못한다는 게 서글퍼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동지애랄까, 인류애랄까 아무튼 뭐 그런 짠한 마음이 솟곤 했다.


그러다 곧 사람이 없는 구간에서는 마스크를 내리는 요령이 생겼다. 앞이나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다시 마스크를 제대로 썼다가 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마스크를 내리는 식이었다. 야외에서 마스크 없이 숨을 쉬는 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 기본값에 변수가 생겼고, 나는 남몰래 규칙을 깨는 일에 약간의 죄책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산에서 나는 상큼한 향을 코로 쭈욱 빨아들인 다음 입으로 후-우- 길게 내뱉는 일을 즐겼다.


알고 보니 많은 등산객들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호흡곤란과 바이러스로부터 서로를 지키려는 최소한의 산중 제스처였달까. 하지만 개중에는 이런 무언의 룰 따위,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고 산에 오르는 사람만큼, 좁은 산길에서 마스크 쓰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정말 꼴 보기 싫었다. 그 무심함과 뻔뻔함에 속이 상했다. 솔직히 감염이 무서웠다기보다는 존중받지 못했다는 기분이 더 거슬렸다. 스쳐 지나가는 시간, 길어야 3초. 고작 3초 사이에 감염될 것이라곤 나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다 마스크는 존중의 표식이 되었나. 과거 신사의 나라에선 인사를 나눌 때 존중의 표시로 모자를 잠시 벗었다던데. 코로나 시대의 북한산에서는 마스크를 잠시 쓰는 게 존중의 표시였다. '혹시 내게 있을지 모를 바이러스가 당신에게 갈까 염려되어 조심하는 중입니다'라는 배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스크 착용의 진실은 타인을 향한 배려라기보다는 본인을 타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마스크 미착용의 진실은 타인을 존중하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그저 마스크의 존재 자체를 잠시 잊어서 일수 있다. 아니면 단순히 3초 마스크 착용이 무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스크가 바이러스 전염을 얼마나 막아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생활 속에서는 방패막 용도 이외의 다양한 용도로도 사용되어왔다. 때로 시민의식을 드러내는 도구로, 비난을 피하기 위한 형식으로, 표정을 감춰주는 베일로. 한 때는 해외에 있는 가족에게 마음을 전하는 최고의 선물이 되기도 했으며 누군가에게는 호황을 불러다 준 효자 상품이기도 하다. 답답해서 당장에 벗어버리고 싶던 마스크는 어느새 익숙해져 일상이 되었고, 다양한 형태와 컬러, 디자인이 등장하면서 패션의 일부가 되기까지 했다. 가끔은 그 뒤에 숨어 있는데에서 오는 편안함(화장을 안 해도 된다거나 익명성을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거리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마스크 해방의 날을 기다려왔던 내게 찬물을 끼얹는 것 같다. 눈치를 보다 조용히 가방에서 마스크를 찾아 꺼내 쓰면서 이 덥고 습한 날씨에 왜들 이러나 볼멘소리를 한다. '벗으라는데 왜 벗지를 못하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에겐 마스크와 작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마스크가 주는 안전한 감각을 좀 더 유지하고 싶다. 어떤 이들은 마스크와 영원히 이별하지 못할 것이다. 가방 속 소지품으로 들고 다니면서 붐비는 곳에서 꺼내 쓰는 사람들이 분명 생길 것이다. 본래의  의도를 넘어 더 많은 의미를 지니게 된 마스크가 얼마나 롱런하는지 지켜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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