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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May 16. 2023

내 좌표 좀...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마이클 슈어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얼마 전 들은 강의에서 강사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주관성을 빼고 나 자신을 볼 수 없다고. 그렇겠지. 나는 나니까. 사실 나뿐만 아니라 남도 완전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내 눈엔 필터가 끼워져 있고 이것은 내장형이라 내 맘대로 끼웠다 뺐다 할 수도 없다. 가끔 버그 수정이나 업데이는 가능하겠지만.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니까 에라 모르겠다. 그래 개썅마이웨이로 살자! 고 하기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렇게 살다 간 캄캄한 독방에서 시들어가도 누구 하나 내게 관심 갖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상관없다는 사람을 말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난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극 E이기 때문에 매우 상관이 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려는 노력을 한다. 성숙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찬물 끼얹는 식으로 "그거 말입니다. 불가능한 일이래요."라고 말하는 대신 "불가능 하지만 우리 한 번 애써봅시다."라고 말해주고 싶은 건, 그들 틈에 있을 때 든든하고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기 우물 속에만 빠져 사는 사람은 영 매력 없고 할 말도 없고... 좀...


자기 객관화는 내게 부족하거나 넘치는 재주, 능력, 감정 등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그래프 위에 점으로 표시해 보는 작업 같다. 그 과정을 잘만 통과한다면 겸손과 자기 확신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방향감각이 생겨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 객관화는 독이 된다. 비교의식을 부추겨 자신감을 떨어트릴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부정에 빠져 자신만의 신념이 훼손될 수도 있다. 내가 믿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중 일부는 맞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애초에 누가 맞고 틀리고를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절대 불변의 진리라는 건 없는 것을. 혹시 반복적으로 자기부정을 하게 만드는 상황이나 사람이 있다면 어서 그것으로부터 달려 나와야 한다. 자기 객관화로 내 모양을 잘 다듬어 가는 것은 좋지만 깎여 사라지게 만들면 안 되니까.


평소엔 별생각 없이 살다가 어떤 난관에 봉착하면 이 문제로 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객관화 한 내 모습과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내 모습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난 너무 성격이 급해. ⇒ 아니야. 사실 추진력이 있는 거야. ⇒ 그렇다고 하기엔 뒤가 찜찜한데. ⇒ 그래. 내가 매사에 좀 조급해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야. 난 왜 이모양일까. ⇒ 무슨 소리야. 자기부정에 빠지지 말라고. ⇒ 맞아.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일이 돌아가지. 안 그래? ⇒ 응. 안 그런 거 같은데? ⇒ 뭐라고? 설마... 나 이 구역 또라이가 된 건 아닐까? ⇒ 그래. 너 또라이야. 성격 급한 또라이 ⇒...

이런 도돌이표식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내가 가진 재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글이 실린 적이 있는 것을 보면 내 글이 꽤 괜찮은가 싶다가도 필력 훌륭한 사람들의 글을 읽고 나면 내 글이 너무 보잘것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정확한 내 좌표를 누가 좀 분명하게 불러줬으면 좋겠다.


"사람의 성격과 습관은 조심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러나 불가피하게 굳어간다."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마이클 슈어, 김영사)

이 사람 말이 맞다면, 나 스스로를 요리 조리돌려보며 탐구하는 일은 머리 아프지만 필요한 일임이 확실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되어가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한 명의 인간이 되려면 이렇게 계속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자기 객관화를 자꾸 연습하다 보면, 그래도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갈 거라 믿는다. 그러려면 나를 익숙함 밖으로 내던지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낯선 곳에 가고,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고, 안 하던 짓을 해보는 거다. 의심스러운 재능은 평가의 무대로 꺼내어 놓아 보자. 거기서 단말도 듣고 쓴 말도 듣다 보면 새로운 나, 무지한 나, 훌륭한 나를 마주 할 테고 그렇게 x축과 y축 중 적어도 하나의 축 값은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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