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레사 May 30. 2023

선 지키기는 존중의 실천이다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네 이웃의 식탁』은 네 가정이 공동주택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이다. 이 네 가족은 영유아를 가진 젊은 부부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당연히) 각각 다른 처지에 놓여있으며 각자의 사정이 있다.


아슬아슬 삐걱삐걱 돌아가던 이 공동체가 마침내 산산조각 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선 넘음' 때문이다. 공익을 위한다는 홍단희의 행동은 조효내에게는 독단으로 다가오고, 서요진에게는 박탈감을 준다. 조효내의 무심함은 홍단희에게 이기로 느껴지고, 신재강의 호감 표시는 서요진에게 부담을 넘어 불쾌감을 주며, 강교원의 검소한 경제관념은 전은오를 질리게 한다.


이 모두에게 악의는 없다. 악의는 없지만 갈등은 발생한다. 인간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불쾌함은 사실 거의 이런 식으로 생겨난다. 작정하고 나를 괴롭히려 드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그보다는 악의 없는 말과 행동 때문에 상처받고 불쾌해지는 일이 훨씬 더 잦다. 때로는 누군가의 선의마저 갚아야 할 빚으로 여겨지고, 부담과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모두 "선 넘음"의 문제다. 각자가 침범당했다고 느끼는 마지노선이 다르기 때문. 이 선의 위치를 잘 감지하는 사람은 분명 갈등에 덜 휘말린다. 신중하게 선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이런 태도는 존중의 구체적 실천이다.


이 '선 감지'가 귀찮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 뭐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우리 사이에' 운운하는 사람도,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 하겠다는 사람도 만나봤다(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고, 종종 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나? 그 정도의 감성적 바지런함 없이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 아닐까? 존중 없는 악의 없음은 쉽게 결례가 되고, 존중 없는 선의는 쉽게 오지랖이 되고 만다.


상호 존중 없는 인간관계는 건강할 리 없다. 너무나 당연하고 상투적으로 들리는 '상호 존중'이라는 말이 현실에서 얼마나 잘 지켜지지 않는지를 생각한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중요한 건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걸 인정하면 우리는 좀 더 신중해질 수 있다. "악의는 없었어."라고 변명하기 전에 존중도 없진 않았나 돌아보자. 선의로 한다는 언행 속에 상대에 대한 존중이 들어 있는지를 점검하자. 혹여나 실수를 했다고 판단되면 깔끔하게 사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애써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내 좌표 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