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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Sep 10. 2023

비둘기 공포증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라는 소설을 나만큼 공감하며 읽은 사람이 또 있을까?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조나단 노엘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다가 현관에서 비둘기를 발견한다. 그 비둘기에게 공포를 느낀 조나단은 그것을 시작으로 끔찍한 하루를 보낸다. 


그렇다. 나도 비둘기를 무서워한다. 길을 걷다 비둘기가 내 시선 안에 들어오면 잔뜩 움츠러든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른 길을 택하거나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뚫고 지나가야 할 때는 동행인에게 쫓아 달라고 부탁한다. 이럴 때 나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보디가드는 아들이다. 가끔은 나보다 먼저 비둘기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타다다닥 달려가 비둘기를 쫓아주는 아들. 임무를 완료하고 의기양양하게 나를 돌아보는 그 얼굴이란.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 혼자일 때에는 비둘기에게 넓은 길을 내주고 나는 한쪽 구석으로 붙어 마의 구간을 통과한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붙들고 종종걸음 하는 그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는지! 그러다 비둘기가 갑자기 날아오르기라도 하면 '꺅!'하고 소리를 질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일쑤이다. 누군가 그런 내 모양새를 보고 비웃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매일 같이 마주치는 비둘기지만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언젠가 한 번은 안국동의 작은 갤러리를 찾아갔다가 차도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비둘기 무리를 만난 적이 있다. '헙'하고 들이마신 숨을 다시 내뱉지 못하고 섰다. 그 무리는 어두운 뒷골목의 갱단처럼 나를 위협했다. 그 갱단만 지나면 목적지가 코 앞인데, 너무 무서워 끽소리도 못 내고 그 길을 조용히 돌아 나와야만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은 그냥 거기에 있었을 뿐 내게 그 어떤 해코지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나는 사색이 되어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억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골목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 골목을 자주 오간다는 행인 1이었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저도 이 골목을 지나가야 하는데 같이 가 주실 수 있으실까요? 골목 안에 비둘기가 너무 많아서…”

“아, 그래서 못 들어가고 여기 서계셨던 거예요? 저는 여기를 매일 같이 지나다니는데 항상 비둘기가 있더라고요. 어떤 날은 한 두 마리, 어떤 날은 여러 마리. 이 골목에 비둘기 먹이를 놓아두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아니, 고양이 밥은 몰라도 비둘기 밥이라니. 대체 누가 그런 기행을 실천하는지 궁금했다. 비둘기는 도시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어 있기까지 한데.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본 적 없나. 그러다 문득 고양이는 되는데 왜 비둘기는 안되는가,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고양이는 귀엽지만 비둘기는 아니니까…?


나의 구세주가 휘두르는 손짓 발짓에 비둘기들은 못 이기는 척 길을 내주었지만, 곧 다시 내려올 태세를 한 채 낮은 지붕 위에 다시 모여 앉았다.


모든 새를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다. 닭 사진만 봐도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런 걸 보면 내가 조류공포증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큰 부리새를 멋지다고 생각하고, 홍학의 우아한 자태에 감탄하기도 하며, 새의 짹짹 거리는 소리는 사랑스럽게 들린다. 산속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는 얼마나 신비로운지… 하지만 이 새들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데에는 사실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새들은 동물원 새장 안에 살거나, 다가설라 치면 사뿐히 날아 도망가거나, 숲 속 어딘가에 숨어있다. 우리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다.


반면에 비둘기는… 너무 가까이에 있다. 도처에. 도시 생활에 완벽 적응한 비둘기는 그 개체수가 서울시에만 50만 마리나 된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징그럽다. 떼 지어 다니는 습성, 인간 음식을 향한 식탐, 웬만한 자극에도 놀라거나 도망가지 않는 강심장, 날기보다는 주로 땅에서 뒤뚱거리는 움직임은 그들의 번성을 가능케 한 특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혐오하게 만드는 특징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다 언젠가 비둘기들이 도시를 장악하고 인류를 위협하는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한꺼번에 몰려와 부리로 내 몸을 쪼거나, 뒤뚱뒤뚱 걷다 느닷없이 휙 날아오르며 날아 차기로 나를 희롱하는 망상… 혐오는 두려움을 낳는다. 아니, 두려움이 혐오를 낳는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그동안 끊임없는 위협에 고통받은 쪽은 인간이 아니라 비둘기였다. 인간의 이기 때문에 터전을 잃은 동물들, 멸종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그 모든 폭력을 이겨내고 끝까지 살아남아 번성하는 데 성공한 종 중 하나가 비둘기다. 비둘기를 향한 내 공포의 기저에는 인간이 모든 것(다른 생명의 생태까지도)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단한 착각이 있다. 인간들은 제 눈에 보기 좋고 순한 종만 적절한 개체수를 유지하며 우리 곁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어쩌다 통제를 벗어난 동물들 - 비둘기, 멧돼지, 쥐, 들개와 같은 - 에게는 당혹감과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어떤 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꺅!'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동물들이야 말로 인간을 보며 혐오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이 징그럽다고. 무리 지어 사는 습성, 모든 종류의 음식을 향한 식탐, 자극을 극복하는 적응력과 파괴력, 걸을 뿐 아니라 차로, 배로, 비행기로 육해공을 누비는 움직임이 혐오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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