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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May 19. 2022

어른들이 어른들의 일을 할 뿐입니다

둘째 아이에게는 선천적인 문제가 있어서 하루에 두세 번 어른의 도움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에 앞서 내 마음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주눅 드는 일이 생길까 봐, 친구들에게 놀림받을까 봐, 도와주는 선생님이 귀찮거나 싫은 티를 내서 상처를 줄까 봐. 한국에 있을 때 유치원 상담을 갔다가 아이를 담당할 보조교사가 거부감을 표시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은 더욱 복잡했다. 보조 교사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충분히 성가신 일이니까, 싫을 수 있다. 내 자식을 돌보는 일도 힘든데, 하물며 남의 자식은 어떻겠는가. 유치원에 보내려는 것은 내 욕심일까, 부모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이에게 미루는 짓인가.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아이의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유치원 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에게도 일반적인 교육의 기회와 사회생활이 필요하다. 아이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 아이의 문제로 교장선생님, 담임선생님, 그리고 양호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모두 호의적이셨고, 적극적으로 도울 의지를 보여주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감사한 일이기는 했으나, 내 불안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직접 아이를 도와주실 보조선생님과는 대화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과제가 내 몫이 아닐 때, 누구라도 그 일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 있다.

"선생님, 제가 학교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달려와서 도와줄 수는 없을까요?"

선생님은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셨다. 학교에는 아이를 돌볼 인력이 충분하고, 학부모가 머물만한 공간은 없으며, 현재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불안감을 안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보조선생님의 반응이 궁금했다. 지시받은 일을 직접 해보니 정말 못해먹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보조교사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에, 담임선생님께 대신 여쭈었다.

"보조 선생님이 너무 힘들어하지는 않으시나요? 제가 너무 죄송스러워서... 가끔은 양호 선생님이 도와주신다고 하던데, 혹시 제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방치되는 시간이 생기는 건 아닌가요? 상황이 어려우면 아이를 오전에만 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이의 담임은 유치원 교사로는 보기 드문, 연륜이 있는 남자 선생님이다. 그가 인자한 미소를 얼굴에 띄고 대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른들이 어른들의 일을 할 뿐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일을 하면 되고요."

 순간, 나는  말을 평생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 말씀이 옳다. 어른들이 각자 맡은 일을 하면 그만이다. 부모는 부모로서 아이를 돌보고, 교사는 교사로서 아이를 돌보면 되는 간단한 . 그것은 아이의 사정이 어떠냐에 관계없이 지켜져야  어른들의 의무다.


그동안 아이에게 아프게 태어난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며,  누구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라고 가르쳐 왔건만, 정작 내가 죄인같이 굴고 있었다. 나는 이제 죄송하지 않다. 감사할 뿐이다. 아이를 함께 돌봐주는 분들을 향한 감사마음,  마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는 부모의 힘으로만 자라날  없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선생님, 이웃과 친구들이 있어야 온전히 자라날  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사람답게  수가 없다.


서로를 돌보는 . 그것 어른의 일이라면 아이의 일이란 놀고, 배우고, 자라는 일일 것이다. 몸이 불편한 아이, 부모가 없는 아이, 가난한 아이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이 마음 놓고 아이의 일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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