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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Aug 23. 2022

어제저녁 시댁이 있는 프랑스에서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떠난 지 한 달이 넘어 들어서는 집 앞에서 머뭇거렸던 것은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집에 곰팡이가 자라진 않았을지(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 하수구를 타고 올라온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것은 아닐지(집 안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막아 뒀음에도), 문 틈으로 침입한 도마뱀들이 터를 잡은 것은 아닐지 등등의 걱정들.


그런 나를 잘 아는 남편이 먼저 점검을 해보겠다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이 들리는 순간 사사삭! 하고 어둠으로 숨어드는 미물들을 상상하며 고통받는 나와 달리, 아빠를 따라 들어간 아이들은 오랜만에 보는 장난감과 침대를 반가워하며 집안 곳곳을 쑤시고 다녔다. 이대로 서서 기다리는 것이 멋쩍어진 나도 곧 집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켜 둔 에어컨 덕에 집 안은 생각보다 쾌적했지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한동안 거실 한쪽에 서서 불안한 눈동자를 굴렸다.


다행히 곰팡이 파티는 열리지 않았다. 미리 설치해둔 수십 개의 제습제와 스마트홈 어플이 제 역할을 해준 것이다. 현관 쪽에 도마뱀 똥은 있었지만 똥 주인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이름 모를 벌레 몇 마리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코니의 식물도 까맣게 말라죽어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다 도망가고 죽은 것만 남아있는 꺼림칙한 집에서 나는 쭈그려 앉아 케리어를 열었다. 별 수 있나. 이럴 땐 눈에 보이는 게 다라고 믿어야지. 확실히 죽은 것보단 산 것이 무섭다.


한국에 살 적엔 이렇게 장기간 집을 비울 일이 생기면 집을 돌봐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있었다. 며칠씩 묵어가거나 가끔씩 들러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식물에 물을 주고, 화장실이나 주방에서 물을 좀 흘러 보내줄 이가. 하지만 이제 막 겨우 반년을 산 싱가포르에는 그렇게 해줄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런 번거로운 부탁을 할 만큼 가깝거나 미더운 사람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와 남편은 새삼 외로웠다. 함께 떠들고 먹고 마실 사람이 없다고 느꼈을 때의 그것과는 농도가 다른 외로움이었다.


스마트홈이라는 현대 기술의 힘으로 대충 무마된 그 외로움은 프랑스에서 가족들과 보낸 시간 동안 완전히 잊혔다. 하지만 녀석은 몸을 웅크리고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벌써 조금씩 외로워지는 것을 보면.... 이런 곳을 집이라 부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집을 잃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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