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께서 발 한쪽을 못 쓰게 되셨다. 거동이 불편한지는 좀 되셨는데 최근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고 입퇴원을 반복하시더니 결국 한쪽 발을 잃으셨다. 다리 동맥 협착이 원인이다. 지난여름 휴가 때 그 심각성을 깨달았다. 걸음마다 통증을 호소하시는 와중에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까지 있었기 때문에 함께 여행을 가도 숙소에만 머물러야 하셨다. 아버님을 홀로 남기고 놀러 나가는 건 누구에게나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큰 마음먹고 외출을 계획했다. 선착장에 가서 페리를 타고 강바람을 쐰 뒤,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코스였다. 걷는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조사가 필요했다. 선착장에서 주차장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식당은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길에 있는지, 들어갈 수 있다면 주정차가 가능한 위치가 어디인지, 계단 유무 등등. 본인 때문에 이렇게 일이 복잡해지는 걸 지켜보는 아버님의 마음은 분명 불편하셨을 테지만, 결국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즐거운 외출을 했다. 그때 속으로 이제 휠체어를 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게 이렇게 금방 현실이 돼버리다니.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이동이 수월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유아차를 밀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 길이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은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두 발로 걸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길은 장애물 천지였다. 주택가에는 인도가 따로 없는 길이 대부분이고 인도가 있다 하더라도 매우 비좁았다. 인도에서 내려오기 위해서는 바퀴 통과가 쉬운 비스듬한 경계석을 찾아야 했는데, 겨우 찾아낸 경사로는 부정주차 차량이 막고 서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내가 살던 빌라촌에서 아파트 단지가 있는 동네로 갈수록 길은 점차 매끄러워졌고 유아차 밀기는 한결 수월해졌다. 그 수월함이 내게 은근한 모욕감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시부모님이 사는 프랑스도 상황이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음번 시댁 방문 때 시아버지의 휠체어를 밀 기회가 생긴다면 그곳의 현실을 절감하게 되겠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온 '두 발로 걷기'가 불가능한 상황을 경험하고 나서야 우리 사회가 걷는 사람을 기준으로 디자인되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쉽게 단정 짓는 '기본값'이라는 것은 무심한 차별과 소외를 낳는다. 어떤 사람이 이동에 불편함을 겪는 것은 그의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기획의 문제, 사회적 인식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갑자기 뜨끔하다. 나야말로 쉽게 단정지은 기본값을 가지고 얼마 전 글쓰기 모임에서 '걷는 사람'을 글쓰기 주제로 내놓았으니. 두 발로 편하게 걷지 못할 수도 있을 누군가에게는 보폭과 신발과 걸을 때의 시선과 자세에 대해 적는 것이 결코 유쾌한 작업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보폭과 신발과 이동할 때의 시선과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티브이 드라마 속에서 연출된 모습이 아닌, 그들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리면 좋겠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는 사람에 대해 아는 만큼, 걷는 사람도 걷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서로를 어떤 환상의 존재나 완전한 타자가 아닌 평범한 이웃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모두의 이동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