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다 이어져 있어서 길이여.'
나를 뒤 따라오고 계시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우리는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고, 잠시 길을 잃었다. 복잡할 것도 없는 작은 동네에서 어린 나는 갈팡질팡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릴수록 몰려오는 낯선 느낌에 허둥거렸다.
'분명 내 기억엔 이쪽으로 가는 거였는데...'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나를 계속 앞장 세웠다. 어쩌면 할머니야말로 길을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 알면서도, 손녀가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기다려주고 계신 거였는지도.
그렇게 헤매는 와중에, 할머니의 태평한 목소리가 들린 거다. 세상에, 길은 사실 다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니! 그렇다면 지금 처음 보는 것 같은 이 길로도 목적지까지 찾아갈 수 있다. 애초에 이길로 가든 저 길로 가든 상관이 없는 거였다. 어차피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근데 그게 정말일까? 모든 길이 연결되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할머니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건 정말 놀라운 발견인 한편 안심되는 소식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모르는 길 위에 서있거나 혹 길을 잃게 되더라도 너무 겁낼 필요가 없는 거였다.
그 이후로 길을 걸을 때면 문득문득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럴 때면 머릿속으로 거미줄같이 얽힌 길을 그려 놓고는 미로 찾기를 하듯 하나의 교차점에서 시작해 다시 그 교차점으로 돌아오는 다양한 길을 따라갔다. 그렇게 할머니의 말을 증명해내고 싶었다. 그 놀라운 말을 재차 확인해서 완전히 믿고 싶었다. 머릿속의 미로 찾기는 늘 성공했다. 그건 길이 다 이어져 있다는 전제 때문이었다. 그 전제를 바탕으로 그려진 길은 당연히 다 이어져 있을 수밖에. 나는 사실 이미 믿고 있었던 것이다. 길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길이라는 할머니의 말을.
그날 결국 목적지에 잘 도착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낯설고 당혹스러웠던 그 길과 할머니가 남긴 문장만이 맥락 없이 내 머릿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기억은 지워져 버렸지만, 우리는 어디로든 갔을 것이고 무탈하게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글을 쓰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겠지. 비록 우리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엄마에겐 조금 못된 시어머니였지만 손자 손녀에게는 자애로운 할머니였다. 한 인물에 대한 엇갈린 평가란 생각보다 흔하다. 그 인물이 남긴 말도 마찬가지다. 엄마에게는 할머니의 거친 말이 남았고, 나에게는 할머니의 혜안 담긴 말이 남았다. 그저 별 의미 없이, 당황하지 말고 찬찬히 가보자는 게 당시 할머니의 순수한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한, 약간의 과한 해석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그날의 어린이는 지금의 내가 되어 살고 있다. 그때보다 더 자주 길을 잃으면서, 그때보다 더 두리번거리면서, 겨우 이런 모습으로.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든 길 위에 서 있기만 한다면, 결국 어딘가에 당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산다. 설령 길을 잘못 들었다 할지라도, 비록 길을 돌고 도느라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어쩌면 겨우 가 닿은 곳이 시시할지라도, 걸음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나는 다시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이 중요한 사실을 내게 일깨워준 사람은 나의 할머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가신 할머니는 그럴 줄 알고 일찍이 내게 유언을 남기셨나 보다.
'길은 다 이어져 있으니까 길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