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꾸옥의 아담한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그랩을 잡아타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향했다. 도로는 한산했고, 운전기사는 느긋했다. 조금 더 빨리 달려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 내가 도시를 벗어난 게 맞긴 맞는구나.'
호찌민 시티의 소음과 매캐한 공기, 도로를 점령하고 아슬아슬 질주하던 오토바이 부대가 아주 먼 곳의 풍경같이 느껴졌다. 불과 한 시간의 비행을 했을 뿐인데.
도착한 리조트는 밝고 쾌적했다. 객실은 우리 네 식구가 쓰기엔 과분할 만큼 컸고, 조식은 흘러넘칠 만큼 푸짐했다. 깨끗한 수영장과 한산한 해변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은 그간의 피로를 씻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휴식이 지겨워졌을 때쯤,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유명 관광지를 방문했다. 동물원으로, 테마파크로. 이제 막 개장한 듯 깨끗하고 여유로운 관광지는 입장료까지 저렴해서 부담 없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었다. 아직 시설 정비가 마무리되지 않은 곳도, 가림막 뒤로 공사가 한창인 곳도 있었지만 큰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유럽의 어느 마을을 본 따 놓은 거리나 중세 유럽 건축물로 꾸며놓은 테마파크에 이르러서는 너무나 인위적인 느낌을 받았다. 동남아의 베니스라든가, 동남아의 아테네라든가 하는 별명을 갖고 싶었던 것일까? 그 자체로 고유하고 아름다운 푸꾸옥인데. 푸꾸옥스럽게 디자인했다면 더욱 멋스러웠을 텐데. 게다가 아직 완공이 안된 탓인지, 코로나19 영향인지, 상가와 건물들이 텅텅 비어있었다. 마치 유령마을 세트장 같았다.
푸꾸옥에는 대중교통이라 부를만한 게 없었다. 아무리 섬이라지만, 그 규모를 감안하면 버스 노선이 하나쯤 있을 법도 한데. 하긴, 베트남에서 가장 부유한 경제도시인 호찌민에도 지하철이나 그럴다할 버스 노선이 없었다. 하물며 섬은... 어쩔 수 없이 리조트 셔틀버스에 의지하며 이동을 최소화하다 보니 누군가 꾸며놓은 트랙 위를 따라 돌고 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보드게임의 말이 된 기분이랄까. 호찌민에서는 걷다가 무언갈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 섬에서는 걸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너무 덥고, 중간에 쉴 곳도 없고, 목적지로 정할 만한 곳은 너무 멀었다. 유일하게 트랙을 벗어났을 때는 그랩을 잡아타고 야시장에 갔을 때였다. 막상 야시장에 가보니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꾼들만 가득했지만.
돌아보면 정말로 트랙을 벗어났을 때는 야시장 주변을 잠시 산책했을 때, 딱 그때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깜깜한 길가에서 구걸하는 여자를 봤다. 그 여자는 두어 살 된 아이와 함께 있었다. 딸아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그들을 지나치면서, 나는 속아 넘어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수십 미터 이어지는 쓰레기 언덕을 보았다.
언젠가 필리핀의 어느 휴양지로 여행을 떠난 친구가 한 말이 떠오른다.
"리조트 밖은 위험해. 실제로 치안이 좋지 않고, 딱히 볼 것도 없고, 지저분하고. 그래서 리조트 안에서만 먹고 자고 놀다 왔어. 말 그대로 휴양이지."
동남아 휴양지로의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무슨 그런 답답한 여행이 다 있나 싶었다. 이제야,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관광객들이 누리(러 오)는 공간과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공간 사이의 간극. 나는 그 간극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여행경비를 지불할 경제적 능력(대부분의 경우 순전히 운으로 얻어지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못생기고, 더러운 것을 안 볼 수 있다.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세트장만 돌다 가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속임수인가. 사기인가. 이 사기의 피해자는 여행자 인가? 아니다. 여행자는 아름답고 예쁜 것만 보고 싶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이 사기에 가담한 연루자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현지인인가? 여행산업이 치워버린 못생기고 더러운 것들은 모두 현지 거주민 곁으로 치워지니까. 하지만 여행산업에 상당한 경제이익을 기대고 있는 이곳에서, 이 사기는 거주민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익을 불러온다. 그렇다면 이 사기는 오히려 훌륭한 기획과 마케팅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마땅할 텐데.
죄지은 사람은 없는데 피해자는 여럿인 것 같은 사기. 분명히 속은 것 같은데 각자의 욕구는 채워지는 사기. 우리 모두는 일말의 찝찝함을 공유하며 이 애매한 사기에 눈을 감아버린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