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다. 나를 사랑하는 내 마음에 대해서. 그런데 그 마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르시시즘에 빠진 아줌마가 돼버린 것 같았다. 결국 그 마음을 글로 적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기애를 언어로 어떻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시로 노래로 편지로 흘러넘치지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니..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내가 1순위니까. 하지만 문득, 난 정말 날 잘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참 모호하다. 나를 사랑하는 일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등 내 욕구에 충실해지는 것? - 그럼 망나니가 될 것 같은데. 더 나은 내 모습을 위해 나를 갈고닦는 것? - 갈면 아플 것 같은데. "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흔한 세상이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 속 시원히 말해주는 이는 많지 않다. 나보단 남을 사랑하는 게 훨씬 더 쉽다는 생각마저 든다(사실 남도 잘 사랑하기란 쉽지 않지만).
남이든 나든 일단 사랑하려면 '서로 알아가는 단계'가 필요하다. 모르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남에 대해서는 잘도 속단하면서, 유독 나 자신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 지을 수가 없다는 데 있다. E인데 I처럼 굴 때도 있고, N인데 어쩔 때는 S이며, F인데 분명 T 같은 면도 존재하고, P인데 J같이 행동할 때도 있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를 단정 짓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나의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해 보았으니까. 나는야 모순덩어리. 이 대목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순덩어리로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받아들이소서."
저기요. 근데 그게 말처럼 간단한 일인가요? 1+1=2처럼 명확한 수식이야 제가 백번도 받아들일 수 있겠소만, 덕지덕지 이것저것 다 갖다 붙인 것 같은 나란 인간은 영...
어쩌면 처음부터 전제가 틀렸던 것은 아닐까? 사실은 남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나도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닐지. 적어도 내게는 뒤집은 전제가 더 설득력 있는 것 같다. 나는 누군가를 알고(안다고 착각하고), 사랑하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나를 더 잘 알게 되고, 그렇게 좀 더 좋은 사람이 된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그런 내 모습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내 시간과 정성을 내어주면서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 느낀다. 그런 내 모습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나는 결국 이런 식으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나의 욕구와 행복, 성장에만 충실했다면 행복하지도, 스스로가 사랑스럽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를 잘 사랑하는 일은 곧 남을 잘 사랑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