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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Mar 20. 2021

바다쓰레기 '줍는 사람'이 되고 싶은 아이.

그렇다면, 나는 너의 일을 줄여 주겠어.

   누가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큰 아이는 “바다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될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혹자는 잠수는 위험하다거나 그걸로 먹고살 수 있겠냐는 걱정을 쏟아 놓기도 하지만, 아이는 진지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장래희망을 이룰 준비를 하고 있다. 한 번은 온갖 장난감을 집안 곳곳에 뿌리고 다니길래 잔소리를 했다. 그랬더니 아이 왈.

  “엄마, 저 바다 쓰레기 줍기 놀이를 하려는 거예요. 먼저 이렇게 쓰레기가 뿌려져 있어야 놀이를 시작할 수 있거든요.”

과연 그렇다. 언젠가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지인에게 핀잔을 줬더니 그 사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환경미화원도 먹고살지~”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완전히 잘 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기억.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이야, 혹시라도 염려하지 말거라. 실전에서는 일부러 쓰레기를 뿌릴  필요가 1도 없단다. 바다에든 어디든 지구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거든.’ 이런 말을 속으로 삼키며 신나게 쓰레기(장난감)를 그러모으는 우리 집 환경운동가를 지켜봤다.

 

해양 쓰레기를 언급하는 어린이 책(『요리조리 열어 보는 바다 (플랩북) 』, 어스본 코리아)

   바다와 바다생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큰 아이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바다가 오염되고 바다생물이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최근 환경이슈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우리 부부의 영향도 있겠지만, 요즘 나오는 아이들 책이나 애니메이션 영향도 크다. 영화 “도리를 찾아서”에서는 플라스틱에 몸이 걸린 도리가 나오고, 바다를 주제로 한 과학도서에는 해양 쓰레기가 언급된다. 세상의 밝은 면만 보여주고 싶지만,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사실, 외면할 수도 없다. 더 이상 가려지지가 않으니까. 분리수거 날에 아파트 단지 내에 탑처럼 쌓여있는 쓰레기를 보고 “이게 다 어디로 가냐”는 아이의 물음에 할 말을 잃어본 경험 혹시 있으신지. 아이들 입장에서는 지금부터 이 상황을 잘 알아둬야 본인들의 미래를 잘 꾸려갈 수 있을 거다.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한다.


심해층에 사는 전기뱀장어와 초롱 아귀. 큰 아이의 그림이다.

   큰 아이는 지난 연말 그린피스 코리아에서 진행한 ‘어린이 바다 보호 그림 그리기 챌린지’에 참가했다. 그린피스 인스타그램에서 행사 안내를 보고 관심이 생겼는데, 마침 아이가 그려둔 바다 그림이 있어 제출했다. 내 눈엔 대상감인데, 수상은 하지 못했다. 처음엔 우리 집 꼬마 예술가의 낙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나, 수상작을 쭉 살펴보고 나니 금방 납득이 갔다. 우리나라에 훌륭한 꼬마 예술가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


   내겐 욕심으로 얼룩진 그림 그리기 챌린지였지만, 아이에게는 어떤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 그 이후로 “바다 쓰레기 줍는 사람”이 장래희망이 된 것을 보면. 아이가 이 꿈을 언제까지 이어갈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가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내가 여태껏 버려온 쓰레기의 뒤처리를 아이에게 맡겨버리는 것 같아서. 이렇게 오염된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응당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은 곁에 두고 싶지 않고, 나는 아이들 곁에 오래 붙어있고 싶으니까. 그래서 나는 미래의 환경운동가의 일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로 한다. 궁극적으로는 환경을 보다 쾌적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아이들에게 숨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을 되돌려주고 싶다. 말은 이리 거창해도, 실천은 매우 소소하다. 소소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나중에 아이들이 엄마를 추억할 때, 오염된 세상에 무심했던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만 기억해준다면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그나마 좀 면이 서는 것이, 이미 일상화된 실천들이 몇 가지 있다. 한 가지 예로 장바구니 사용하기. 이건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보고 배운 것인데(역시 행동으로 가르쳐야 한다.), 돌돌 말아 부피를 줄여 휴대할 수 있는 장바구니를 늘 들고 다니는 거다. 점원의 “쇼핑백 필요하세요?”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하며 가방에서 장바구니를 꺼내 펼칠 때마다, 아주 지각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진다. 그 외에 지퍼백 대신 반찬통이나 보자기 쓰기, 그릇 수거해가는 중국집 애용하기(배달음식 자체를 줄여야 하느니라.) 등이 있다. 너무 소소한가? 하지만 이 소소한 변화들이 실제로 우리 집 쓰레기 양을 상당량 줄여주고 있다.

 

   좀 더 용기가 필요했던 변화들도 있다. 비누와 면 생리대 쓰기, 그리고 고기와 양식 연어 덜 먹기다. 비누 사용은 현재 가족 모두가 매우 만족하고 있다. 샴푸바는 생각보다 거품도 잘 나고 세정력도 좋다. 비누로 샤워한 뒤로 놀랍게도 피부가 덜 건조해졌다. 비누거품 잔여물이 샤워 젤 거품에 비해 피부에 덜 남아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한다. 면 생리대 사용의 경우 방송인 이효리 씨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한 말에 충격을 받고 결심한 일이다. “내가 버린 생리대가 어딘가에서 썩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찝찝하지 않아?”라는 식의 발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의 경우 반은 실패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결국 일회용 생리대, 탐폰, 면 생리대를 적절히 섞어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한번 몸에 익은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임을 절감한다. 고기 덜 먹기도 지키기 어렵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이틀은 고기 안 먹기를 유지하고 있다. 양식 연어가 큰 바다생물들의 먹이를 대량으로 앗아간다는 말에 좋아하는 연어회는 끊었다(가끔 연어 초밥은 먹는 아이러니는 비밀).

카레 얼룩이 안 빠지는 손수건

   몇 주 전에는 갑 티슈와 물티슈를 끊었다. 지금 우리 집 식탁 위엔 갑 티슈나 물티슈 대신 디자인이 각기 다른 손수건 네 장이 올려져 있다. 그것을 냅킨으로 사용하고, 물티슈가 필요한 순간엔 물로 적셔 사용한다. 손수건을 사용했던 첫날, 우리 가족이 그간 식탁 위에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왔는지를 함께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손수건에 단번에 적응했다. 더러워져도 버리지 않고 빨아서 다시 쓸 수 있다는 점을 훌륭하게 여긴다. 지구를 위해 무언 갈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기 효능감도 느낀다. 솔직히 나는 손수건을 빨다 가끔 후회한다. 저녁 메뉴가 카레인 날, 유난히.(카레 물든 거 어떻게 지워요? 엉엉)

    

   아직 갈 길이 멀다. 택배로 물건 받는 일도 줄여야 하고, 사실,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 이제 나는 마트에 가면 진열된 모든 상품들이 쓰레기로 보인다. 나는 이걸 사서 결국엔 버리겠지...라는 생각도 들고 특히 사용되지도 않고 뜯는 순간 버려지는 포장재들이 제일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런 인식이 확실히 과소비를 줄여주는 것 같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신경 쓰고 실천하고자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다짐한다.


   또다시 바다 쓰레기 줍기 놀이 중인 아이에게, 바다를 치우기 전에 집을 먼저 정돈해 보는 것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아이는 너무나 뻔뻔하게 대답한다.

“엄마, 저는 바다를 청소하고 싶은 거지, 집을 청소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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