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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Apr 03. 2021

분리수거장 줍줍러

득템의 즐거움

   해외로 이민을 가게 된 지인 가족이 '집안 살림 대 처분'을 할 때였다. 마침 우리 집 소파를 바꾸고 싶은지 3년도 더 된 터라, 냉큼 소파를 가져가겠노라고 했다. 지인이 쓰던 소파 연수가 우리 집 소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가죽 갈라짐이 일절 없었고 무엇보다, 베이지 색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해가 잘 안 들어 어두운 우리 집 거실이 한 층 더 밝아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이랑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구입한 짙은 밤색 소파는 채광이 좋은 집에 살 때 가죽이 다 망가졌다. 직사광선에 노출된 가죽이 조금씩 갈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조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끝내는 가루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얼룩덜룩 못생겨진 소파를 보는 것도, 가죽 조각과 가루를 치우는 일도 징글징글했지만, 막 써도 된다는 편안함 때문에 쉽게 처분하지 못했다. 낡은 소파 위에서는 아이들이 방방 뛰거나 뭘 흘려도 부담이 없어서, 두 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에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마침내 이별을 고할 때가 온 것이다. 가까운 지인이 쓰던, 찝찝하지 않은 중고 소파를 공짜로 얻을 기회가 생겼으니!

      

   드디어 새 소파(사실 중고지만)가 용달차에 실려 우리 집에 왔다. 단번에 거실 분위기가 산뜻하게 바뀌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소파 위에 덮어둘 요량으로 구입해 둔 블랭킷까지 더하니 멋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딘가 2% 부족한 느낌. 1인용 의자나 암체어가 추가로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그리고 곧, 내 아쉬움을 눈치챈 신은 내게 기적과 같은 의자 두 개를 보내주셨다. 바로 우리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장으로.  

아파트 단지에 버려진 의자들. 폐기물 스티커 부착을 당부하는 경비실의 메시지가 적혀있다.

   나무 프레임에 하나는 부드러운 브라운색, 다른 하나는 민트그레이색 패브릭으로 감싸진 깨끗한 의자였다. 아무리 봐도 사용한 지 얼마 안 된 의자로 보였고 게다가, 무려 리클라이너였다. 부자가 되면 제대로 된 리클라이너 하나를 사는 것이 꿈이었던 내게, 소박하게나마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동의를 구하는 메시지를 보낸 뒤, 답변이 오기도 전에 의자를 하나씩 집으로 날랐다(이럴 때 힘이 세진다). 다리 부상으로 칩거 생활을 하던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야?"

  "의자! 이렇게 멀쩡한데 요 앞에 버려져 있더라고. 이제 우리 꺼. 잠깐만, 한 개 더 있어."

목발 신세를 지고 있던 남편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나는 나머지 의자까지 집에 들였다. 세척과 소독을 거친 후 거실에 두니, 웬걸, 새 소파와 정말 잘 어울렸다. 주워온 가구들로 새단장한 거실을 보는 것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BEFORE
AFTER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장을 훑는 습관은 최근 몇 년 새 생겼다. 아이들이 읽을만한 전집을 발견하면서부터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에도 뭔갈 주워왔다.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의 필독서라 알려진 「Why 시리즈」. 온 식구가 산에 가려고 집을 나서던 차에 습관적으로 분리수거장을 스캔했는데, 그 책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책은 깨끗한 상자에 차곡차곡 잘 정돈된 상태로 버려져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가져가길 기대하며 그렇게 한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애들아! 이리로 와서 이 책들 좀 봐봐. 엄마 생각에는 너희가 재미있어할 것 같은데, 어때?"

책 제목을 천천히 읽으며 큰 아이가 살짝 흥분했다.

   "바다, 지구, 우주, 곤충... 우와~! 전부 제가 더 알고 싶은 것들이에요. 안에 내용이 궁금해요!"

   "그렇지? 우리 이거 집으로 가져갈까?"


주워온 책들을 살펴보는 큰 아이

   이제는 다리가 완전히 다 나은 남편이 책이 든 상자를 거뜬히 옮겨줬다. 아이들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새로 들인 책 구경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은 아이는 책을 하나하나 닦아 냈고(내가 닦고 있었는데 본인이 하겠다고 했다. 모든 것이 놀이가 되는 5세), 큰 아이는 앉은자리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그 책들을 모두 훑어봤다. 버려진 물건이 모두 쓰레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끗하게 닦아 놓으면 다시 쓸 만해 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운 날이었다. 그런 특별한 기억이 담긴 전집이라, 그 책들에게 더 정을 줄지도 모르겠다. 어디로부터 온 건지 알 수 없는 택배 상자에 든 물건들 보다는 말이다(아닌 게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두 아이들은 why책을 보고 있다.)   


   나는 썩 검소한 편은 아니다. 뭐든 마음에 들면 약간의 무리를 해서라도 꼭 손에 넣는 편이고, 철이 바뀔 때마다 옷을 사고 싶어 안달이 난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이 더 알뜰하다는 것을 알지만, 새벽 배송과 쓱배송의 편리함을 포기 못한다. 하지만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당*마켓을 먼저 훑고, 분리수거장에서 쓸만한 물건을 주워오는 것도 나다. 그게 경제적이고 환경친화적 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보물 찾기 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그렇다. 누군가에겐 쓸모를 다한 물건이 다른 사람에 의해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이렇게나 장점이 많은 중고거래와 줍줍. 주변 사람들에게 당*마켓과 분리수거장 스캔을 권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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