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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Mar 27. 2021

프랑스 시댁에서 온 소포

소포는 사랑을 싣고

    이른 아침 우체국에서 연락이 왔다. 해외에서 소포가 하나 왔는데, 주소가 불분명하다고. 가끔 있는 일이다. 반듯하게 적힌 알파벳이 익숙한 한국 사람에게는 외국인이 영문으로 적은 주소는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다. 숫자를 적는 방식도 꽤나 달라서 정확도를 요하는 주소로 적혀 있으면 난감할 만하다. 나 또한 그들의 손 글씨를 알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연초가 되면 프랑스 곳곳에서 날아오는 반가운 카드를 혼자 힘으로 읽어 본 적이 없다. 매번 남편이 읽어주는 소리에 기댄다.

  

   얼마 전 시어머니께서 부활절을 맞아 소포 하나를 붙이셨다고 했는데 그게 오늘 오려나 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반가운 소식을 알리는 톡을 보내고 나서 기다리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기다림이 드문 일이 되어버린 지금,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대부분의 일이 바로바로 처리되고 빨리빨리 해결되는 이 시대에, 집에서 보내주는 소포는 시대를 역행하는 특별한 감정을 선물하니까.

 

   소포를 기다리는 쪽은 한가로이 감상에 젖지만, 보내는 쪽은 바쁘다. 보낼 물건들을 고민하는 것(이게 가장 품이 드는 일이다)으로 시작해 쇼핑, 상자 준비, 포장까지 마치면 우체국에 방문해 서류를 작성하고 상자를 넘긴다. 비로소 일이 끝난 것 같지만 끝이 아니다. 소포 상자가 트럭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트럭으로 갈아 탄 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혹시 모를 분실이나 파손에 대한 불안감을 안게 된다. 누군가 사랑은 행하는 곳에만 있다 했던가. 소포를 보내는 일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진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책을 살펴보는 아이

   드디어 소포가 도착했다. 온 가족이 싱글벙글. 어떤 선물이 들어 있을지 잔뜩 기대하며, 소포 상자를 연다. 과연 테트리스 하듯 상자를 속을 꽉꽉 알차게도 채워 보내셨다. 아이들 선물이 대부분이다. 큰 아이는 제일 먼저 책을 꺼내 보고, 둘째 아이는 초콜릿을 종류별로 맛본다. 나는 꼬릿한 냄새가 나는 치즈를 서둘러 냉장고에 넣는다. 내가 가장 기다려왔던 거다. 남편은...... 전부를 살핀다. 상자 속에 담긴 부모님의 그리움과 사랑을 본인의 그것과 겹쳐본다. 그렇게 마음을 데운다.

      

   계획대로라면 지난봄에 시어머니가 한국을 방문하셨을 테고, 여름에는 우리 식구가 프랑스에서 여름휴가를 보냈을 거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시댁 식구들을 못 본 지 2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전염병이 육체적 고통과 사망률 때문에 무서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립으로 인한 이별의 고통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빠르게 바뀌어 가는 손주들의 예쁜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없는 시부모님의 아픔이 살결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나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시부모님이 그리운데, 남편은 어떨지 감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시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더욱 그렇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더니, 정말 그렇다. 가족들 보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질 줄이야. 코로나 영향으로 남편의 싱가폴 발령도 무기한 대기 중이고, 하다 못해 아이들 놀이터에 나가 노는 것도 시시각각 변하는 미세먼지 수치에 따르는 요즘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사는 법을 익혀야 할밖에. 이 난리 통에도 삶은 계속되고, 아이들은 자라고, 계절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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