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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Apr 10. 2021

더 바랄 게 없는 아침

강한 아픈 아이를 키우며

  “엄마, 아침이에요”     

매일 아침 날 깨우는 건 둘째 아이의 목소리다. 누구라도 깰까 속삭이는 톤으로 날 깨우는 사랑스러운 딸. 가만히 소곤거리기만 하지 날 만지지는 않는다. 그저 곁에 서거나 앉아 내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린다. 나는 그것이 신기하고 기분 좋다. 살며시 눈을 떠보면 잘 자고 일어나 얼굴이 말간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잠을 깨우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짜증스럽기 마련인데, 이 얼굴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녹는다. 몇 시에 자든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우리 집 알람시계, 아니, 주말에는 좀 더 일찍 일어나는 살짝 제 멋대로 인 알람시계가 나를 본다.               


   아프게 태어난 아이다. 정확히 말하면 몇 가지의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 태어나자마자 앰뷸런스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아이는 그다음 날 들어간 첫 수술을 시작으로 돌이 되기 전까지 총 네 번 수술실에 들어갔다. 고통스러웠다. 나는 자주 울었고 남편은 가끔 울었다. 아이는.... 잘 울지 않았다. 울음이 짧은 아기였다. 잘 자고, 잘 놀고, 잘 웃는 순한 아기였다. 울어 마땅한 순간에도 아이는 덤덤했다. 겁먹는 건 늘 나였다. 당사자가 이렇게 나오니, 내가 계속 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울기를 멈췄다. 그리고 살았다. 아이처럼 씩씩하게. 아픈 아이가 아프지 않은 나를 달랬다.          


   그때 나를 진짜로 힘들게 했던 건 아이의 고통 때문이었을까, 그걸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나의 고통 때문이었을까? 아이보다 내가 먼저인 사람이라서, 엄마가 된 후로 자아를 찾는데 더욱 골몰했던 사람이라서, 나는 이 질문을 앞에 두고 자주 길을 잃었다. 엄마가 될 자격이란게 있다면 나는 그 자격을 박탈당해 마땅했다. 나 같이 이기적인 사람은 이 짓을 도통 당해낼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요령껏 했다. 나는 나의 한계를 알았고, 딱 거기까지만 했다. 완전히 희생하지 않았다. 억척스럽게 굴지도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정도면 되는 거였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일이라는 것이 내 일상과 인생을 몽땅 갈아 넣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실제로 부딪히며 그런 깨달음을 얻기 시작하면서 용기가 났다. 희망이 생겼다.           


   길고 지옥 같았던 시간들을 일일이 적고 싶지는 않다. 그건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곧 만 4세가 되는 아이의 대표적인 기형은 잘 교정된 상태다. 훌륭한 의료진을 만난 덕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적응기를 갖는 중이기는 하지만 아이는 아기 때부터 그랬듯이, 아주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 가끔씩 고개를 드는 내 조급함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다.        


   강하다는 건 무엇일까. 지난날 내가 알던 힘의 이미지와는 영 거리가 먼 이 아이가 내게는 강하다. 이 작고, 미숙하고, 보드라운 아이가 나를 움직이고 나아가게 한다. 한 때는 이 힘이 나의 젊음과 가능성을 갉아먹는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정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의 젊음과 가능성을 내어주고 이렇게나 강하고 아름답게 자라는 아이를 보는 일은, 정말이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나는 여전히 젊고, 나름의 가능성이 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니, 더 바랄 게 없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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