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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Apr 10. 2021

아빠의 생일

Papa, pas de cadeau!

   내일은 남편의 생일이다. 오늘 아침 남편이 먼저 출근하자, 나는 두 아이에게 말했다.

“내일 아빠 생일이니까, 유치원이랑 어린이집에서 선물을 만들어 와.”

자유 활동 시간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두 아이는 임무 완수를 약속하고 등원했다.     


   하원한 아이들은 아빠에게 줄 그림을 가방에서 꺼내 보여줬다. 큰 아이는 알파벳을 모티브로 한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려왔는데, 아직 미완성이라며 방에 가져가 좀 더 손을 봤다. 둘째 아이는 예쁘게 색칠한 키티 그림을 가져왔지만 너무 예뻐서 본인이 갖고 싶단다. 결국 그 그림은 자기 방에 붙이고 나와 함께 작은 카드를 만들었다. 드디어 아빠 선물이 모두 완성되었고 나는 그것을 잘 숨겨두라고 했다. 아빠 생일에 짠하고 보여줘야 하니까 그전까지는 비밀로 하자고.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 선물을 꼭꼭 숨겨놓았다.      


   아이들에게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사실 나야말로 선물을 꼭꼭 숨기는데 벌써 실패했다.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그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일찍이 준비해두었는데, 들켰다. 때는 지난주 부활절 아침이었다. 평소 사용하지도 않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내 앞에 내놓더니 그는 말했다.     

“애들 에그 헌트(egg hunt)할 때 찍어주려고 카메라 챙겼어. 근데 있잖아... 나 봤어.”     

한 3초간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뭘 봤다는 거야? 그러다 곧 아차 싶었다. 선물을 침대 머리맡에 있는 내 쪽 수납장에 숨겨두었는데, 거기가 바로 카메라를 넣어두는 곳이라는 게 생각난 거다.     

“으악! 너는 진짜, 왜 이렇게 집을 쑤시고 다녀! 사진은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되잖아아!”     

나는 망했지만, 아이들만은 서프라이즈에 성공하길 바랐다.


   아빠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나자 둘째 아이가 아빠를 부르며 달려 나갔다. 딸은 잘 다녀왔냐는 인사도 하기 전에 말했다.     

“아빠, 아빠~~~~, 내 옷장 절대 열어보면 안 돼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얼른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딸아, 그걸 말하면 아빠가 궁금해져서 옷장을 열어 볼 수도 있어. 그러니까 아무 말하지 않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아이가 검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였고, 신발을 다 벗은 남편은 애써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며 중문을 열었다. 그때 큰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ㅇㅇ야! 선물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말라고-오!”     

망했다. 수습불가. 제 딴에는 동생이 답답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두 꼬마의 말을 종합해 보면 문제의 그 옷장 속에 선물이 들어 있다는, 빼도 박도 못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고 만다. 이제 그만 여기서 멈춰 주면 좋겠건만 둘째 아이가 사태를 수습한답시고 다시 입을 연다. 혹시 아빠가 못 알아들을까 봐, 굳이 잘하지도 못하는 불어로.     

“Papa, pas de cadeau! (아빠, 선물 없어)!”     

남편과 나는 크게 웃어버렸다. 다른 게 선물이 아니라 이런 순간이 선물 아니겠냐는 생각을 하며.     


   아무래도 내가 아이들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 것 같다.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아이들과 비밀공작을 꾸미려 하다니. 오늘 밤이 가기 전 선물을 꺼내 보여주지 않으면 다행이다. 부디 내일까지 잘 버텨주길.                


+

저녁식사 중 남편이 큰 아이에게 기습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선물이 뭔데?”

“절대 안 말해 줄 거예요! 그.림.그.린.거!”     



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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