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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Apr 24. 2021

뒤죽박죽 엉터리 삼개국어

우리 집에는 세 개의 언어가 공존한다.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 남편의 모국어인 프랑스어 그리고 우리 둘 만의 영어인 막글리쉬. 어쩔 때는 한 문장 안에 세 언어가 다 들어가 있기도 한다. 이를테면,     

“여보(한국어), notre fille(프랑스어) loves going to the(영어) crèche(프랑스어).”

=“여보, 우리 딸은 어린이집 가는 걸 정말 좋아해.”     

아이들은 가끔 이런 식으로 말한다.     

“안(한국어) manger(프랑스어)”.

=“안 먹어.”     

때로는 방금 전 내가 어떤 언어로 말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서로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만난 우리 부부는 첫 만남부터 영어로 대화했고 아직까지도 영어가 제일 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영어가 유창할 것이라고 짐작한다면 좀 곤란하다. 한국에 콩글리쉬가 있고 싱가포르에 싱글리쉬가 있다면 우리의 영어는 막글리쉬다. 막하는 영어라고나 할까. 둘만 이해하면 되는 영어. 밖에 나가서 쓰기 좀 창피한 영어. 틀리는데서 만날 틀리는 영어. 서로 고쳐주지 못하니 발전이 없는 영어. 아무튼 이게 둘이 살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복잡해졌다. 이런 엉터리 언어로 아이를 양육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다문화가정 선배 육아러들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아이에게 각자의 모국어로만 말하기로 했다. 나는 한국어로, 남편은 프랑스어로. 그래야 아이들이 두 개 언어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고 들었다. 솔직히 그 조언은 나나 남편에게 아주 반가운 것이었다. 모국어를 사용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편하니까. 우리의 엉터리 외국어를 아이들이 배우게 될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살며 한국 어린이집에 다닌 두 아이들의 한국어는 자연스럽게 유창해졌다. 당연히 나와의 소통에는 일절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남편 쪽이었다. 오직 아빠를 통해서만 흡수하는 아이들의 프랑스어는 더디게 늘었고 무언가 할 말이 생길 때면 아이들은 아빠보다는 엄마를 더 찾았다. 나는 아들, 딸, 남편 세 사람의 최전방 오디오받이 겸 통역사로 세워져 쉽게 피곤해졌고, 남편은 자주 좌절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가끔은 아이들이 아빠와의 소통을 포기하게 되진 않을지 함께 염려했다.  

   

첫째 아이가 프랑스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부터 상황은 빠르게 변했다. 하루가 다르게 프랑스어가 늘었고 곧 아빠와의 대화를 편안해했다. 이제는 아빠와 소통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역시 언어는 잦은 노출이 답인 것 같다. 아직 한국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 아이의 프랑스어는 단어를 나열하는 수준이지만, 언젠가 잘하게 될 것을 알기에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가끔 행인이 아이들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영어를 전혀 못한다. 심지어 영어울렁증이 있는 듯함.)  


나를 만난 지 14년이 넘은 남편의 한국어는 여전히 형편없고, 나의 프랑스어는 유치원생 수준이다. 서로에게 서로의 언어를 가르치다가는 싸움만 난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 우리의 선생님은 아이들이다. 아이에게 모르는 단어도 물어보고 발음 교정도 받는다. 아마 남편도 아이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을 거다. 그의 한국어 실력이 영 나아지지 않는 것을 보면 한국어를 배우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것은 아닌지 가끔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한국생활 11년 차, 아직도 한국어가 서툰 남자」 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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