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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Sep 17. 2021

흔하디 흔한 러브스토리 - 1

나는 어쩌다 프랑스 남자를 만났나

그와 나는 시드니의 한 어학원에서 만났다. Hi, how are you?를 함께 배우던 그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리의 친구 인희 언니 덕이었다. 일찍이 그의 마음을 눈치챈 언니는 연애상담사를 자처하며 그와 나를 엮어주었다. 주말에 언니가 불러서 나가보면 그가 나와있는 식이었다. 당시 나는 남자 친구를 만들 생각이 없었을뿐더러 더군다나 외국인을 만나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그가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은 나도 느끼고는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날 버스정거장 까지 데려다 주었으니까. 특별한 내용 없는 이메일을 보내거나 가끔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파일을 첨부해 보내오기도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나가는 모임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고 그렇게 자주 마주 치다 보니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 였다. 능통하지 않은 영어로 이어가는 대화로는 도저히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깊이 파악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같은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표정, 말투, 태도 따위를 가지고 어떤 사람인지 대강 감이라도 잡을 수 있을 텐데, 공교롭게도 그는 내가 태어나서 만난 첫 번째 프랑스 사람이었다.


"언니, 그 친구 그냥 동양인 한 번 만나보고 싶어서 저러는 거 아닐까요? 제일 어리고 만만해 보이는 내가 타깃이 된 거고."

누가 날 먼저 좋다고 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기에, 내가 그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도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주변에는 다국적 매력녀들이 넘쳐났으니, 왜 하필 이 많은 중에 나 같은 여자에게 이러나, 싶은 의문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낮은 자존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호기심 따위에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나는 그런 식으로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연애에 있어 진중한 스타일이었던 나는 '불장난'이라고들 부르는 십 대 시절의 연애에도 꽤나 진지했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만났고, 한 번 남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 오래 만났다. 대개 내가 먼저 사랑을 고백했고, 일단 연애가 시작되면 내 사랑은 늘 상승곡선을 그렸으며, 결국 차이는 쪽은 나였다. 그 덕분에 아프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불장난에 매 순간 진심이었으니까.


"아니야. 그 사람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야. 나를 믿어봐."

"음, 그게 사실이라 해도 전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쩌죠. 클래스메이트로 지내기는 재미있는 친군데, 그냥 그게 다예요. 그 사람 좋자고 제가 사귀어 줄 수는 없는 일 이잖아요."

"오, 당장 사귀라는 게 아니야. 그냥 재미로 데이트나 해보라는 거야. 그렇게 만나다 보면 그 친구가 좋아질 수도 있거든. 아직 잘 모르잖아. 그 사람에 대해. 그에게 기회를 줘봐. 너에게도 무언가 배울 경험이 될 거야. 겁먹지 않아도 돼."


이제 막 스무 살이 지난 당시의 나는 '오늘부터 1일!'하고 외치는 경계가 분명하고 다소 유치한 연애에 익숙했다. '사귀는 사이'라고 확실히 선을 그어 놓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 놓고 데이트를 하고, 손을 잡고, 어깨를 안고, 키스를 할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언니 말에 따르면 연애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날짜를 세고, 각 시기에 맞는 단계를 밟아가는 어떤 시스템이 아니었다. 호기심이 호감이 되고 사랑의 감정이 되어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물들어 가는 것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완전히 설득당했다. 마침 내 생일을 맞아 밥 한끼 사주겠다는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래, 어디 한번 만나나 보자.


그렇게 한번 만나나 본 남자는 미래에 내 남편이 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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