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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Sep 29. 2019

돈은 상수, 사람은 변수

시골창업일기 

창업을 하고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여러 차례 위기를 겪게 된다. 특히 자본력보다는 아이디어와 인적 자원만으로 끌고 가야 하는 스타트업은 매 순간 위기를 겪는 것이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위기는 돈보다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갈등이 증폭되고 특유의 조직문화가 깨지는 순간이 가장 위험했다. 


스타트업은 자본이 부족해 위기를 겪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예상했던 매출이 발생하지 않고, 운영비가 부족하고, 인건비를 어떻게 충당할지 고민한다. 첫번째 창업한 회사도 법인 통장 잔고가 바닥을 찍는 일이 허다했다. 그때마다 예상하지 않았던 일거리가 들어왔고, 그래도 운영비가 부족하면 서로 힘든 형편이지만 공동 창업자들끼리 푼돈이라도 모았다. 매출 실적이 쌓이자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저리로 대출도 받았다. 한 창업 동료는 성장 가능성을 증명하면 투자도 받을 수 있다고 햇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차피 스타트업은 늘 자본이 부족하다. 여러 리스크 중에 자본 부족은 늘 정해져 있는 상수라고 생각한다. 상수는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고 관리 가능하다. 더 위험한 것은 언제 어떻게 달라질 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다. 그 변수는 내부에 있다. 바로 사람이다. 


처음으로 창업했던 회사는 영상도 만들고 출판도 하고 행사도 기획하는, 시골의 종합기획사 같은 곳이었다. 나를 포함해 창업동료 3명은 우리 회사의 핵심 자원이었다. 도시에 살다가 귀촌한 동료들은 모두 콘텐츠 분야에 감각이 뛰어난 친구들이었다. 돈없는 귀촌청년들끼리 모여 창업 당시 자본금 200만 원으로 시작했으니 돈 문제는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시골에서는 '매출'을 올리거나, '돈'을 구하는 일이 도시보다는 치열하지 않다. 신용보증기금 심사에도 정부와 기업의 각종 지원에도 '지방 프리미엄'이 있다. 창업 인프라가 열악한 조건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방이나 시골에는 '스타트업'이 희귀하다. 숫자가 적으니 경쟁이 심하지 않다. 


시골은 돈보다 사람이 귀하다. 시골에서 콘텐츠 제작, 기획, 경영에 대한 능력을 가진 동료를 만나는 일은 하늘에서 별따기다. '사람' 역시 관리 가능한 상수라고 생각하는 사업가가 많다. 사람도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만두는 사람이 생기면, 얼마든지 그 자리를 메울 사람을 뽑을 수 있다고 쉽게 말한다. 그 회사가 충분한 성장 가능성과 매력을 갖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노동시장에는 늘 직원을 구하는 회사의 수요보다 일자리를 찾는 노동력 공급이 많으니까.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시골이든 도시든, 공간을 불문하고 초기 스타트업에게 사람은 귀하다. 박봉을 견디면서 공유하고 있는 비전을 위해 함께 달려갈 동료를 찾기는 힘들다.(그 회사의 비전에 동의하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 아직 스타트업에게 비전은 가설에 불과하니까.) 일단 창업 초기 단계를 지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초기 멤버들은 각자 스타트업이라는 수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수레의 오른쪽 바퀴가 다른 방향으로 가자고 하고 왼쪽 바퀴는 그 길이 아니면 그만두겠다고 할 경우, 아무리 손잡이를 꽉 쥐고 있어도 수레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첫 회사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창업 초기 3명으로 시작해 2년 차에 8명으로 늘었다. 창업했을 때의 방향성은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창업 초기에 공동창업자 간 의견차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이 큰 문제였다. 새로운 구성원이 대거 들어오는 시기에 의견차는 증폭됐다. 숨기고 있던 폭탄은 언젠가 터진다. 몇 개월간 회사의 방향성을 두고 논쟁을 벌이느라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일이 문제가 아니라 회사 전체가 위태로워 보였다. 


어느새 '스스로 다니고 싶은 시골회사를 만들기 위해 창업한다'는 초심은 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시골 라이프스타일을 잃으면 더이상 이 회사에서 일할 이유가 없는 친구들이다. 도시에서 다니던 회사가 싫어서 직장을 때려 치우고 시골로 온 것 아닌가. 창업 초기에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시골에 살기 위해 필요한 소득을 정해놓자. 그 소득에 다다르면 일을 줄이고 시간을 갖자. 사람을 더 뽑아서 일을 나누자."


각자가 가진 욕심을 함께 제어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욕심을 부리기 사작하면 깨지기 쉬운 약속이었다. 창업 4년 차가 되었을 무렵 갈등이 시작됐다. 초심대로 시골라이프를 지키며 일하자는 쪽과 회사의 성장 속도를 높이기 위해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쪽으로 갈렸다. 


결국 더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이 초심을 이겼다. 내가 생각하는 조직문화와 달랐으므로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회사의 대표가 다른 창업멤로로 바뀌었다. 결국 도시든 시골이든 그저 평범한 조직문화의 회사로 바뀌고 말았다. 갈등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커버 이미지 출처 :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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