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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Nov 12. 2019

직장 없이 시골에서 '존버'

인생이 크게 방향을 틀 때마다 두려움과 마주해야 했다. 서울를 떠나 충남 홍성이라는 낯선 시골로 이사 올 때도 그랬고, 시골에서 소중한 밥벌이가 되어준 직장을 그만둘 때도 그랬다. 삶이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앞으로 펼쳐질 길이 내리막인지, 오르막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스스로 정체되고 세상에서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삶이 변곡점에 다다르면 관성의 힘을 거슬러 속도가 0이 되는 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구간을 버티면 새로운 방향을 찾아 다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서른 중반의 나는 인생이 그런식으로 흘러가는 지 미처 몰랐다. 

 

시골이라는 공간과 퇴사라는 환경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불안감은 증폭됐다. 그곳은 넓고 황량했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울타리 없는 야생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가장으로서 온 감각을 곤두세우고 매일매일 네 식구의 먹거리를 찾아 헤매야 했다.


신문사를 그만 둘 무렵, 내 머릿속에는 시골에서 글로 먹고살기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다. 지나고 나서 알게 됐지만 그 아이디어는 허깨비였다. 그 허깨비가 밤마다 괴롭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 날은 기막힌 아이디어를 찾았다는 착각이 들어 날아갈 것 같다가도, 현실에 부딪혀 부족한 점을 깨닫고 나면 다시 가라앉았다. 시골 다락방에 앉아서 혼자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던 셈이다.  


기자가 된 지 10년차가 되던 해에 신문사를 나왔다. 유일한 경력이 기자인지라, 지역 이슈를 깊숙이 취재해서 전국에 알리는 1인 미디어가 되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앞으로 종이신문 시장이 더 어려워지면 나처럼 신문사를 뛰쳐나오는 지역신문 기자가 많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 1인 미디어를 모아서 지역 MCN(멀티채널 네트워크)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MCN은 인기 온라인 채널을 가진 1인 미디어들 협업해 시너지를 만드는데, 유튜버 크리에이터들의 MCN이 대표적이다. 당시에는 생소한 개념이라 이런 구상을 로컬에 적용해 보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대단한 아이디어라도 되는 것 마냥 우쭐했다. 


‘언젠가 신문사, 특히 지방일간지부터 위기가 올 거야. 그때 기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디어 환경이 급변한 상황에서 1인 미디어밖에 대안이 없어. 내가 먼저 신문사를 나와서 기반을 다지는 거야. 5년 뒤에는 그런 1인 미디어 기자들을 모아서 플랫폼이든, 네트워크든 만들 거야.’


신문사에 사표를 낼 때만 해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이 있었다. 하지만 지방의 신문사는 망하지 않았다. 몇몇 신문사들은 경영이 힘들지고 전반적으로 기자 채용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나오지만, 기자들이 신문사에서 쏟아져 나와 1인 미디어를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혼자 시골집 다락방에서 글을 끄적이며 보내는 날이 흘러갈수록 자신감은 줄어들고 그 빈 공간을 불안감이 차지했다. MCN을 만들기 위해 내가 먼저 영향력 있는 1인 미디어가 되어야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잠을 깨고, 낮에 낮잠을 자는 일상이 반복됐다. 가끔씩 취재거리를 찾아 현장에 나가 글을 썼지만, 일상이 흔들리면서 전형적인 백수생활을 답습했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50여일 쯤 지났을 때 시골에서 직장 없이 버티면서 깨달은 점 5가지를 블로그에 썼던 글이 있다. 그 중에 3가지만 소개한다. 




첫째, 노는 것도 내공이 필요하다. 한 달이 지나자 노는 것에 불안감이 생겼다.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열심히 살지 않으면 낙오할 지도 모른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기자 출신 작가인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진다”고 했지만 그 경지는 어디쯤일까. 그저 현재에 집중하면 되는 일인데도 그게 쉽지 않다. 일단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노력하려고 한다. 지금 이 글도 그냥 쓰고 싶어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둘째, 몸으로 부딪혀봐야 명확해진다. 머릿속에서 수없이 고민해서 짠 계획은 엉성했다. 계획과 계획 사이의 틈은 너무나도 넓었다. 태평양이다. 그 태평양 같은 간격을 몸으로 부딪치며 채워나가야 한다. 하지만 머릿속의 장기적인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태평양을 건널 수 있는(헤엄을 치던, 배를 타던, 다리를 놓던) 내공을 쌓아야 한다.


셋째, 쓰지 못하면 읽기라도 한다. 특히 불안할 때는 읽어야 한다. 불안만 증폭시키는 생각을 끊어내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것은 없다. 고종석의 <문장> 같은 두꺼운 책을 펴고 저자의 생각을 무작정 따라간다. 책을 읽다가 고민해결의 실마리까지 얻으면 금상첨화다. 책을 읽으면 평온해진다. 평정심을 되찾으면 글을 쓴다. 무슨 글이든 매일 쓴다. 거창한 것을 쓰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불안하지 않다. 작은 것부터 충실하게 쓴다. 게다가 시골 다락방은 책 읽기에도, 글쓰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나약한 의지만 빼고 다 갖췄다.




퇴사 전후로 공감하며 읽었던 김훈의 수필집 <밥벌이의 지겨움> 마지막 부록으로 김훈은 남재일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거다. 뭘 해 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그런데 노는 거, 그게 말이 쉽지 해보면 어렵다. 놀면서 돈 쓰고 돌아다니는 거는 노는 게 아니라 노동의 연장이다. 돈에 의지하지 않으면 못 노는 거는 돈 버는 노동 세계와 연결돼 있어서 노는 게 아니다. 노는 거는 그 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둘이 노는 거다.”      


어중간한 백수생활이 반년 정도 이어졌다. 그 시간 덕분에 스스로 직장을 만들었고, 이제는 그 직장의 울타리가 없이도 자유롭게 일하는 법을 터득했다. 여전히 먹고 살기 위해서는 노동은 필수적이지만, 노동 때문에 망가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신문사를 나온 후 내가 시골에서 어떻게 먹고사는 지 궁금해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넌 요즘에 뭐 해 먹고 사냐?’고 묻곤 했다. 시골에서 창업한 이후에도 그 질문은 계속됐다. ‘네가 만든 회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이냐? 너는 뭐 하는 사람이냐?’ 비즈니스 모델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창업자로서 부족한 점이지만, 나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김훈의 말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나는 기자인지, 작가인지, 사업가, 강사인지 ‘뭘 해 먹고 사는지 감이 안’ 오는 사람이 된 거다.


직장을 박차고 나오면서 ‘그 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둘이 노는’ 방법이 하나둘 늘고 있다. 첫 번째는 글쓰기다. 돈을 벌기 위해 쓰는 글은 노동의 연장이겠지만 나의 내면을 바라보며 끄적일 때는 정말 ‘세상 하고 단둘이 노는’ 기분이다. 일을 하다 머리가 지끈거리면, 나만의 놀이터인 노트북 하얀 화면 위에서 아이가 모래 장난하듯 끄적인다. 이렇다 할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지만, 그 시간은 고된 삶에 위안을 준다. 


두 번째 놀이는 공부다. 마흔이 넘으면서 시작한 공부가 너무 재밌다. 생존을 위한 공부가 아니다보니 노동과 전혀 다른 차원의 작업이다. 읽고 싶은 책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생각에 마흔두 살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요즘에는 먹고 사는 일보다 공부가 우선순위 위에 있다. 


마지막 퍼즐은 먹고 사는 일, 노동도 놀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노동과 공부와 글쓰기가 조화로운 삶은 가능하지 않을까? 앞으로의 인생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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