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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Nov 15. 2019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아도 괜찮아

농촌이라고 해서 농사만 지어서 먹고살라는 법은 없다. 농사만 지어서 먹고살기 힘든 시대다. 특히 돈 없는 청년이 땅을 구하고 비닐하우스를 짓고, 농기계를 사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갈 일이다(그 구멍을 지나간 '존경하는' 귀농 친구들도 있다).


나는 귀촌할 때부터 농사 생계를 해결할 생각은 없었다. 정확하게 농사를 전혀 짓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농사는 취미다. 생명 돌보는 일은 즐겁다. 정원 가꾸듯 텃밭을 가꾼다. 집 앞 텃밭이 150평 정도 되니, 정원 치고는 꽤 넓은 편이다. 


귀촌 10년차, 바빠지면서 텃밭에 들어가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밭에 있는 시간이 좋다. 새소리를 들으며 땅콩 잎 사이로 풀을 뽑고 있으면 밭이 아니라 숲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땡볕에는 밭에 나가지 않는다. 옅푸른 새벽빛이 비칠 때나 서쪽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저녁에 밭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고민거리가 많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밭에 나가 맨손으로 흙을 만져가며 풀을 뽑는다. 어두워져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밭에 있는 날도 많다. 그런 날은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으면 어린 땅콩 잎 잔상으로 가득했다. 


농사가 밥벌이가 되는 순간 고된 노동이 된다는 것도 잘 안다. 돈벌이라고 생각하면 즐길 수 없다. 더 크게 더 많이 생산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그럼에도 땅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정직하게 농사를 짓는 농부님을 존경한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내가 좋아하는 시골, 농촌이 존재할 수 있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하고 싶은 만큼만 농사짓고 거둘 수 있는 만큼만 거둔다. 나머지는 자연에 둔다.  


마당 앞 텃밭에서 키우는 땅콩 어린잎

서른 살에 서울에서 충남 홍성으로 귀촌했다. 서울 토박이인 아내는 시골살이가 소원이었다. 그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치솟는 서울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과 자연을 꿈꿨다. 서울에 살 때 세 살배기 첫째가 울거나 조금만 뛰어도 아래층에 사는 주인아저씨가 올라와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런 눈치는 정말 보기 싫었다. 귀촌을 실천한 후 우리 가족은 서울 봉천동 달동네에 있는 전세 5000만원 짜리 12평 다세대 주택에서 벗어나, 소나무 숲과 텃밭을 양쪽에 끼고 있고 마당이 넓은 한옥집을 전세 2000만원에 얻었다. 대지가 무려 598평이다. 해방 이듬해에 지은 한옥집이니, 70년이 넘은 집이다.  


서울에서 인터넷신문 기자였던 나는 지역신문에서 새 직장을 얻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삶을 담고 싶어 선택했지만 언젠가부터 지역신문사 일이 즐겁지 않았다. 글은 여전히 틀에 박힌 기사체에 얽매여 있었으며, 신문 마감 때마다 반복되는 야근으로 쳇바퀴 도는 일상은 도시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자로 지낸 지 10년에 되던 서른다섯 살에 신문사를 나왔다. 다락방에서 글만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족 생계 걱정이 앞섰다. 8년간 주부로 지내던 아내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내가 원하던 바이기도 했다.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육아를 전담하며 아이들과 깊이 친밀해 질 수 있는 시간을 쌓았다. 


시골살이를 꿈꾸는 도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귀농귀촌 캠프'에 귀촌 선배로 참여한 적이 있다. 캠프에 참가한 도시 청년은 30~40명 정도였다. 시골에 살고 싶어 하는 20~30대들이 그렇게 많다는 데 놀랐다. 대부분 농사로 먹고살 수 있을지, 자금이 얼마나 필요하고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 지 물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걱정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 '스펙'이 놀라웠다. 출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등. 농촌에서 드문 귀한 재능들이다.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얻은 재능이 농촌지역의 니즈와 연결되면 충분히 밥벌이가 될 수 있다.

 

기자 경력을 활용해 농촌 지역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를 창업해 시골에서 먹고 산다. 농사로는 먹고살기 힘들거나, 농사가 체질에 맞지 않지만 농촌에 계속 살고 싶은 청년들이 적지 않았다. 그중에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동료들을 모았다. 글 쓰고, 사진 찍고, 영상 만들고 행사 콘텐츠도 기획한다. 다들 귀촌하기 전부터 미디어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다. 3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2년 만에 9명의 일터로 성장했다. 미디어 재능은 도시에는 흔하지만 시골에는 귀하다. 그 재능을 지역과 연결하면 직업이 된다. 창업 동료들은  귀촌해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생계를 이끌어가는 프리랜서들이었다.


시골의 삶 속에 일터가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룰지 동료들과 함께 디자인했다.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 퇴근 시간은 오후 4시로 정했다. 4시에 퇴근하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마중 나갈 수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퇴근하는 것이 예전부터 바라던 일상이었다. 아내가 퇴근하기 전에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해가 긴 여름에는 밭에서 풀을 뽑으며 하루를 마감했다. 어두워지면 아이들을 재우고 다락방에서 글을 쓴다. 물론 일이 몰리면 각자의 집에서 밤을 새기도 했다. 하지만 업무시간 내에도 충분히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서로 허용하기로 약속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이러한 자유로운 업무 스타일에 대한 의견이 충돌이 생겼고,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글로 남겨야겠다.)


창업한 회사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하며 산다. 도시에 살 때보다 살림살이는 더 풍족해졌다. 내가 살고 싶은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풍요롭게 사는 것은 축복이다. 


도시를 떠나서도 도시와 같은 방식으로 산다면 시골에 온 의미가 없다. 도시 청년 한 명이 시골살이를 망설이다가 '아,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도 그렇게 살아볼까'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걸로 족하다. 청년들이 더 많이 농촌에 와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 친구들이 많아져야 나의 귀촌생활도 즐거워진다.


*메인 이미지 출처 : Photo by Dave Hoef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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