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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Nov 27. 2019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후유증 극복기

요즘 글쓰기가 괴로웠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끝난 뒤 10일 동안 한 편의 글도 완성하지 못했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책 제목을 정하고 목차까지 만들었지만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소재로 글을 써야 하는지 알면서도 도저히 쓸 수 없었다. 약속 없는 저녁이면 습관처럼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지만, 결국 쓸데없이 커피값만 축냈다.


3주 전, 그러니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마감을 앞둔 일주일 동안 정말 열심히 글을 썼다. 1주일에 3편을 완성했다. 목차에 맞춰 착착 글이 나왔다. 글이 술술 풀려나온 경험은 처음이었다. 글 한편, 한편 발행할 때마다 뿌듯했다. 프로젝트에 당선되지 않더라도 조만간에 책이 완성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마감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정글은 내가 쓰는 게 아니라, 마감이 쓰는 것인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이번에는 응모하지 않으려고 했다. 당시 '시골에서 글로 먹고 살기'라는 주제로 책을 쓰고 있었는데, 이 주제로 쓴 글은 고작 2~3편에 불과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10편의 글이 필요한데 턱없이 부족했다. 꾸준히 글을 쌓아서 내년 프로젝트에 참여하려고 했다.


프로젝트 마감 1주일 전, 서울 출장 갔다가 호텔방에서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다. 새벽이라 정신이 맑았다. 그동안 브런치에 쓴 글을 살펴보는데 서로 다른 주제로 쓴 글들이 묘하게 연결되는 걸 발견했다.


'어! 이 글을 모아서 프로젝트에 응모하면 되겠는걸? 내가 '시골에서 글로 먹고 살기'라는 주제에 너무 얽매어 있었네. 그럴 필요 없잖아.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로 제목을 정하고 서로 비슷한 것끼리 챕터로 묶으면 되겠네!'


'시골에서 글로 먹고 살기'라는 주제만으로 10개의 소재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 틀을 벗어나니 넓은 대지가 보였다. 그 대지에는 글 쓸 소재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시골에서 글쓰기', '시골에서 강의하기', '시골에서 창업하기', '시골에서 다양하게 살아가기'라는 챕터로 나눠 14편의 글을 모았다. 그렇게 '시골이라고 농사만 지어야 하나요?'라는 제목으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마감을 앞둔 일주일 동안 신나게 글을 썼던 상황을 되돌아보니, 지금도 기분이 좋아진다. 연말까지 공모 결과를 기다리지 고 그 에너지로 계속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책을 쓰는 발판을 닦기 위한 계기만 만들어도 충분했다. 14편의 글만으로는 한 권의 책이 되기 부족했다. 비어 있는 부분 눈에 보였고, 그것만 메워나면 한 권의 책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글을 쓰다 길을 잃었다. 그런 답답함 토로한 글들이 공개지 못한 채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몇 편이나 쌓여 있다. 왜 글을 쓸 수 없는지 들여다보며 글을 썼다. '나는 책을 쓰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썼다(비공개 글이지만 살짝 엿보시길).




"'책을 야 한다'는 욕심이 너무 다. 목적 지향적인 글은 쓰기 괴롭다. 순간순간 쓰고 싶은 글이 모여 책이 되는 것이지, 내가 이런 책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억지로 쓴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책은 억지로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억지로 쓴 글은 독자도 알아차린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끝나고 글을 쓸 수 없었던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틀을 정해놓고 글을 쓰려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찾은 주제와 목차가 하나의 틀이 되었다. 그 틀에 맞춰서 글을 쓰려니 힘들었다. 그래,  '글감옥'에 갇혀 있었다. 조정래 작가는 '황홀한 글감옥'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그 감옥이 황홀하지 않았다. 글감옥에 갇히긴 싫다. 나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원한다."




브런치북 프로젝트 마감 일주일을 앞두고 신나게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한층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글로 먹고살기'라는 틀을 깨고 '시골이라고 농사만 지어야 하나요?'라는 더 넓은 주제를 찾았다. 하지만 마감이 끝난 뒤에 그 자유로운 대지는 다시 감옥으로 변했다. 그 감옥 안에서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또 하나의 감옥이 있다. 브런치라는 더 큰 감옥. 그 감옥에서 독자들이 읽을 만한 소재를 찾아 헤다. 책 주제에 맞게 쓰기 힘들어서, 일단 쓰고 싶은 주제로 브런치에 발행하려고 했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쓰고 싶은 글이 우선이 아니라 공개할 만한 글을 쓰려고 하니 소재를 찾을 수 없었다.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쓴 글은 '작가의 서랍'에 쌓여 있다. 그 글을 다듬어서 발행해보려고 했지만 감옥을 지키는 감독관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유롭게 글을 쓰려는 자아를, 감독관이라는 또 다른 자아가 얽매고 있었다. 감독관 감시 아래에서 쓴 글에는 에너지가 없다. 틀에 박힌 글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쓴 글에는 힘이 느껴진다.


책을 기획한 다음 글을 쓰는 것인지, 일단 쓰고 싶은 글을 쓴 다음 책을 기획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기획하고 그 기획에 맞춰 글을 쓰는 작가도 많겠지만, 나는 후자를 택했다. 일단 자유롭게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 우선이다. 그 글을 모아서 독자를 만날 수 있도록 기획하고 다시 글을 고쳐 쓰는 게 맞다. 기자생활, 획 출판물을 만들면서 '써야 하는 글'을 10년 넘게 왔다. 그것이 지겨워서 내 책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는 '쓰고 싶은 글'을 자유롭게 쓰고 싶다.


이 글은 작가의 서랍에 넣지 않고 발행을 누를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이다. 그러니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후유증은 일단 극복된 셈이다. 자유롭게 글을 쓰다가 또다시 그 글이 또 하나의 틀이 되어 갑갑해지면, 그 틀을 다시 깨고 자유로워지기를 반복하겠지. 그러다 보면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는 작가의 내공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응모작 '시골이라고 농사만 지어야 하나요?'>

 https://brunch.co.kr/brunchbook/rural-life 


메인 이미지 출처 :  Photo by Webaroo.com.a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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