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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Jan 27. 2020

치앙마이 디지털노마드 실험 보고서

자유롭게 일하기

노트북 하나면 세계 어느 곳이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첫번째 창업했던 회사를 그만 두기 전에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모습이다. 새로 회사를 창업하면 더 자유롭게 일하고 싶었다. 그 자유로움이 효율성으로 이어지는 지도 실험해보고 싶었다. 두번째 창업 준비를 마치자 마자 태국 치앙마이로 떠났다. 노트북과 핸드폰만 있으면 그 곳이 어디 사무실이 되었다.


치앙마이는 디지털 노마드의 천국이라고 들었다. 실제 물가도 싸고(단, 관광객 대상으로 하는 곳은 한국이랑 물가가 비슷해서 실제 치앙마이 물가를 체감하기 힘들다) 어딜 가든 와이파이가 잘 터진다. 심지어 호텔 수영장에서도 와이파이가 잘 터져서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하면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외국인도 다.


하지만 생각보다 디지털 노마드족이 많지 않았다. 호텔에서 2명, 카페에서 1명, 3일 동안 3명을 봤다. 모두 서양 외국인이었고,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는 한국(동양)인은 못 봤다. 치앙마이에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치앙마이에서 한국 관광객은 이틀 동안 거의 보지 못하다가, 어제 저녁 치앙마이의 유명한 볼거리인 '선데이 마켓'에 우연히 갔다가 여기저기 한국어가 들렸다. 그냥 그동안 내 동선이 한국 관광객들과 겹치지 않았을 뿐이었다.


치앙마이 카페에 가면 다들 노트북을 들고 뭔가를 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한국의 카페처럼 말이다. 어쩌면 디지털 노마드의 천국은 한국일지도 모른다. 근데 한국은 물가가 비싸고 치앙마이처럼 고요하고 평온하지 않다. 이곳 카페에 들르는 사람들은 그냥 차 마시시고 이야기 나누거나 가만히 햇볕을 쬐다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1월 치앙마이의 햇볕은 사랑스럽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치앙마이에서 주로 글을 썼던 카페 'COOL MUANG'. 올드시티 타페 문 근처 공항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다.


치앙마이에서 디지털노마드로 3일 동안 보낸 일상은 이렇다.


아침 8시쯤 일어나서 골목길을 찾아다니며(도로변에는 매연이 심하다) 조깅을 하고 돌아와서 명상을 한다. 호텔에서 늦은 조식을 먹는다. 요즘 하루 두 끼 정도만 챙겨 먹기 때문에 조식은 양껏 먹는다.  10시 30분쯤 출근하듯이 읽을 책과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걸어서 근처 카페로 간다.


카페는 대부분 한산한데 읽고 싶은 만큼 책을 읽고 쓰고 싶은 만큼 글을 쓴다. 이곳에서 마감이 며칠 남지 않은 원고 한편을 완성했고 미뤄왔던 책 쓰기도 시작했다. 오후 2시~3시 정도까지 카페에 있다가 호텔로 들어가 수영을 즐긴다. 수영을 하다가 뒤로 젖혀지는 의자에 누워서 책을 읽는다. 서양 사람들 흉내 내며 일광욕도 즐긴다. 다시 호텔방으로 돌아가 잠시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한다.


4시쯤 되면 배가 고픈데, 우연히 찾은 싸고 맛있는 로컬 식당으로 식사하러 나간다. 이때도 노트북과 책은 챙긴다. 식사를 마치고 잠깐 시내를 둘러본다. 목표를 정하고 어디를 가야겠다는 관광객 관점이 아니라 발 닿는 대로 걷는다. 걷다 보면 치앙마이의 다양한 문화와 마주친다. 어제는 선데이 마켓이 열렸고, 사찰에서 법회가 열려서 참석했다. 태국 사람들, 서양 관광객 등 다양한 인종이 앉아 있는 법당의 분위기는 묘했다. 거기서도 태국식 염불을 들으며 잠시 참선을 했다.


걷다가 마음이 가는 호프집에 자리를 잡는다. 첫날은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고 싶어 망고주스를 시켰고, 둘째 날 은 혼자 심심해서 SINGHA 맥주 큰 거 한 병을 주문했다. 거기서 치앙마이 거리를 바라보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오후 7~8시쯤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호텔 근처에 있는 마사지샵에 들른다. 타이 전통 마사지 1시간에 200~250밧(우리나라 돈으로 8,000~10,000원) 정도다. 온몸의 피로는 물론 그동안 내 몸의 혈에 막혀 있던 찌꺼기들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마사지는 젊은 분보다 어머니뻘 되시는 분이 더 잘하시는 것 같다. 타이마사지는 어머니가 고된 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의 뻣뻣한 몸을 풀어주기 위한 것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숙소에 돌아와서 잠이 오지 않으면 편의점에 가서 안주거리와 맥주를 산다. 담배 필 수 있는 호텔 발코니에서 맥주를 마신다. 맥주를 마시지 않은 날에는 또 책을 보거나 글을 쓴다. 그것도 귀찮으면 영화를 한편 본다. 그리고 잠자리에 든다.


저렴한 가격에 수영장까지 딸린 'TOP NORTH HOTEL'.  시설은 낡았지만, 유럽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 같았다.


일주일 동안 치앙마이에서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좀 더 자세히 적어본다.(2020년 1월 기준)

 

물가


숙박비 : (저렴한) 호텔 2인실 25,000원. 2인 조식 포함.(1인 기준 12,500원)


인터넷 예약 사이트에서 미리 예약했다. 1월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수영장 딸린 호텔을 구할 수 있다. 시설은 낙후되어 있지만, 유럽 사람들이 많다. 이 유럽 사람들은 호텔 밖은 나가지 않고 수영장 주변에서 하루 종일 일광욕즐긴다


식비 : 1식 40밧(1,600원)


요즘 적게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서(싸고 맛있는 태국 음식 앞에서 그 노력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루 2끼만 제대로 먹는데, 한 끼는 호텔 조식, 한 끼는 로컬 식당을 이용한다. 치앙마이에 도착한 첫날 너무 배가 고파서 길가에 관광객이 주로 가는 음식점에서 먹었는데, 가격도 한국 수준이고 맛도 형편없었다.


그날 저녁 골목길을 걷다가 현지인이 주로 이용하는 음식점에 갔는데, 가격도 싸고 태국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메뉴가 40~45밧였다. 우연히 찾은 줄 알았는데, 한글로 '할머니 식당'이라고 적힌 작은 나무 푯말이 걸려 있었다. 한국 관광객이 만들어 준 것 같다.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맛다는 뜻.


커피숍 : 아메리카노 1잔 75밧(3,000원)


1잔에 30밧 하는 곳도 있는데, 내가 주로 가는 카페는 노트북으로 일하기 쾌적하고 책 읽기에 고요해서 좀 비싸더라도 매일 이곳에 간다. 치앙마이 공항에서 타페 문 근처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카페다.


호프집 : 상하 맥주 큰 거 1명 100밧(4,000원)


편의점에서는 60정도 했던 것 같은데, 호프집에는 100밧. 1병 시켜놓고 2~3시간 책 보고, 노트북으로 일해도 눈치 주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렇게 한 두병 시켜놓고 무작정 앉아서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 외국인이 많았다.


기타 : 시장 군것질 하나 당 20밧(800원) 정도


어제 선데이 마켓(우리나라 장날 같은데, 굉장히 크고 노상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군것질 거리가 많았다)에서 사 먹은 꼬치가 20밧 정도 했다.


교통비 : 0원


뭔가 관광을 위해 멀리 가지 않는다면, 치앙마이 올드시티 전체는 다 걸어 다닐만하다. 카페도 호프집도 숙소에서 모두 10분~15분 거리였다.


타페 문 근처 우연히 찾은 로컬 식당. 어느 착한 한국인이 나무로 된 푯말까지 만들어 준 것 같다. 매일 이곳에 들러 한 끼를 해결했다.


고요함과 평온함


좁은 인도와 차로에 관광객과 오토바이, 차량으로 번잡하지만, 거기서 잠깐만 벗어나면 고요하고 평온하다. 아마도 치앙마이의 햇볕이 가진 힘인 것 같다. 호텔마저도 하루 종일 햇볕만 쬐고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 때문인지 시간이 멈춰있는 듯했다.


디지털노마드로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야외에서 일하는 느낌이다. 이것도 햇볕의 힘이다. 그늘 아래서 포근한 햇볕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도 온화해진다. 대부분 가게가 창문도 없는 넓은 테라스 공간을 끼고 있다. 그래서 벽과 창문으로 막혀 있는 실내에 머무는 시간은 거의 없다. 호텔 수영장 옆 테이블에서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렇게 바깥공기를 마시며 글을 쓴다는 것은 참 행복한 경험이었다. 꼭 골방에 갇혀서 글을 쓸 필요는 없다.


무료함


혼자 왔더니 심심하다. 내일이면 한국에서 동료 2명이 올 텐데, 그날만 기다리고 있다. 동료들은 관광이 목적이라 그들 스케줄에 맞춰야 하겠지만 말 상대가 필요하다. 영어를 좀 잘했다면 외국인 친구를 사귀었을 텐데 말이다.


아침부터 해지기 전까지는 혼자서 고요히 책도 보고 글 쓰는 일이 즐겁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글만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호프집에 가도 혼자서 할 게 없어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며 혼자 대화한다. 밤이 외롭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보다 글쓰기가 더 좋다면 혼자라도 좋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그런 사람은 굳이 한국을 떠날 필요는 없겠다.)


효율성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일단 여기 와서 마감을 앞둔 원고는 금방 썼는데, 마감이 없는 책 쓰기 같은 글은 많이 쓰지 못했다. 투입한 시간 대비 글 쓰는 양은 많은 것 같지만 글쓰기보다는 멍때리기, 책 읽기, 핸드폰 하기 등으로 시간을 더 많이 보낸다. 좀 더 효율성을 높이려면 마감을 앞둔 일을 싸매고 오면 좋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고요하고 자유로움이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 여기서 반짝하는 아이디어 같은 건 아직 얻지 못했지만 내면의 평화를 얻으니 글쓰기가 고되지 않다.


총평


숙박비(조식 포함)를 제외하고 하루 체류비는 최소 1만 원 정도면 충분히 지낼 수 있다. 여기에 8,000원~10,000원 정도 더 쓰면 매일 타이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다. 관광객 대상으로 하는 식당은 한국 가격이랑 별반 차이 없다. 어딜 가든 장소에 따라 물가는 다르므로. 현지인 기준으로 지내면 그렇다는 뜻이다.


숙박비를 포함해도 하루 체류비는 혼자 왔을 때 최소 35,000원(혼자 왔을 때, 둘이 와서 2인실 쓰면 1인당 25,000원) 정도면 된다. 더 저렴하게 있으려면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해도 된다.


디지털 노마드의 특권은 자유로움이 아닐까. 자유로우니 일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놀면서 일하는 것도 그 특권 중에 하나다. 여기 있으면서 글을 쓰는 동안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하고 싶은 일만 한 것 같다. 해야 하는, 미뤄왔던 일은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결국 디지털 노마드는 하고 싶은 일로 삶을 디자인하는 하나의 도구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곳 타국까지 일거리를 싸들고 오는 것보다, 일단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삶을 세팅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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