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강의 첫 수업 시간이면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책 표지를 보여준다. 조지 오웰 이후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같은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답을 찾았다. 이 질문을 마을 글쓰기 강의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활용한다. 마을기자단 강의에서는 '나는 왜 마을 기사를 쓰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마을 에세이 강의는 '나는 왜 마을 에세이를 쓰려고 하는가', 마을조사단 강의는 '나는 왜 마을을 조사를 해서 기록하려 하는가'.
마을 주민들이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이 질문을 던진다. 일단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야 무엇을 알려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짧은 글을 쓰게 한 다음 한 명 씩 발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다들 귀농귀촌에 대한 행복한 꿈을 꾸며 농촌에 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이 현실을 제대로 알고 농촌으로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어요."
"귀농하셔서 많이 힘들었나 봐요."
"처음 귀농했던 마을에서 주민들과 관계 때문에 힘들었죠."
대화가 이 정도 이어지면 답답했던 마음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마을기금을 두고 벌인 갈등, 주민들의 시샘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말로 표현하지만 모두 좋은 글감이다.
"지금 말씀하신 걸 그대로 글로 옮겨도 되겠는데요?"
이 말을 듣고 글을 쓰기 시작하더니 다음 강의에 초고를 완성해 왔다. 글을 쓰려는 목적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목적과 관련된 여러 상황이 떠오른다. 그렇게 떠오른 글감의풀어나갈 순서를 정하고 묘사나 대화, 설명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면 글은 완성된다. 하지만 글쓰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글을 쓰겠다고 노트북을 펼쳤을 때, 하얀 화면에 깜빡 거리는 가느다란 막대만 무작정 쳐다보고 경우가 있다. 뭘 쓰지?, 어떻게 쓰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일단 무엇을 쓸지 정해야 어떻게 쓸지 알게 된다.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것은 글의 메시지를 찾는 과정이다('어떻게 쓸지'는 구성을 짜는 일이다.)
메시지는 내가 이 글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글은 대부분 메시지를 명확하게 정하지 않고 쓴 글이다. 이런 경우 글을 쓴 사람도 자기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메시지 찾기 위해 좀 더 세부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나는 왜 쓰는가'는 다소 철학적이고 너무 큰 질문이다. 지금 당장 쓰려고 하는 글을 왜 쓰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다. '나는 이 글을 왜 쓰는가', '나는 이 글을 왜 쓰고 싶은가.' '나는 이 글을 왜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하는가'. 던지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메시지가 탄생한다. 던지는 사람은 필자이고, 받는 사람은 독자다. 결국 메시지는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글쓰기 강의에서도 “그래서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뭐죠?”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다. 이것도 쓰고 싶고 저것도 쓰고 싶다며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에서 '진짜'를 찾으라고 한다.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것 말이다. 한 편의 글에는 하나의 메시지를 담는 것이 좋다. 진짜를 찾고 나면 나머지는 버린다. 아까우면 기록해두었다가 다른 한 편의 글로 쓰면 된다. 쓰고 싶은 메시지가 많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다. 연관된 메시지를 담은 글이 여러 편 모이면 책이 된다.
첫 수업부터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해 명확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한 편의 글을 수월하게 완성한다. 반면 메시지 찾기, 메시지 다듬기만 하다가 수업을 끝마치는 경우도 있다. 충남 태안 마을 에세이 강의에서 만난 김명옥 씨는 처음부터 글을 쓰고 싶은 목적이 분명했다.
"조용한 어촌 마을. 우리 마을은 80세가 넘으신 어르신들이 자존감 없이, 즐거운 일 없이 살고 계십니다. 내가 쓴 글을 통해 90세가 넘어도 낙엽을 팔아 수익을 내고 있는 일본의 어느 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처럼 활력 있는 그런 마을로 바꾸어 보고 싶습니다."
초고는 메시지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이런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한 글이 나왔지만, 글을 다시 고쳐 쓰면서 노구를 이끌고 갯벌로 힘겹게 일하러 나가는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 어촌계장님과 마을의 가능성을 찾기 위한 대화, 일본의 마을 사례가 어우러져 마을의 발전 가능성을 고민해보게 하는 멋진 글이 탄생했다. 메시지가 명확했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전달할 구성과 표현방법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처음 찾은 메시지가 글을 완성할 때까지 유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글을 쓰면깊게 생각하게 하는데 들여다볼수록 메시지가 바뀐다. 바뀐다는 말보다 다듬어진다는 말이 맞겠다.
신문에 시골청년에 대한 연재 글을 쓴 적이 있다. 처음에 쓰고 싶은 메시지는 '시골 청년 있는 그대로 봐주기'였다. 시골 청년 한 명 한 명이 가진 매력을 있는 그대로 봐줄 때 시골도 더 다채로워질 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충남 금산군에서 활동하는 '청년문화예술 협동조합 들락날락' 친구들을 만난 기억을 더듬어 썼다. 글을 쓰다 보니 청년들의 색깔이 보였다. 시골이라는 보수적인 공간에서 청년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지키며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과정을 겪으며 자신만의 색깔로 시골 청년문화를 만들어가는 그 친구들이 고마웠다.
'청년의 색깔을 지켜줘서 고마워'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실렸다. 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들락날락’ 친구들이 글을 공유하면서 덧붙인 말은 '생긴 대로 살아요'였다. 무릎을 쳤다. 그 제목이, 그 메시지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렇듯이 완성한 글이 인쇄된 다음에 더 매력적인 메시지를 찾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