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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Mar 03. 2020

땔감 구하듯 글감 찾기

마을글쓰기<2>

기사 쓸 때 글감을 구하려면 취재를 한다. 그때는 글감이라 하지 않고 '기삿감(기사+감)'이라고 불렀다. 10년간 기자생활을 했는데 편집회의에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그게 기삿감이 된다고 생각해?"였다. 국어사전에 '감'을 찾아보면 먹는 감도 나오지만 '어떤 물건을 만드는데 바탕이 되는 재료'라는 뜻도 있다. 기삿감이 안 된다는 말은, 그 재료로는 기사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기사도 글이니 기삿감도 글감이다. 글감은 큰 글감과 작은 글감으로 나눌 수 있다. 땔감에 비유하면 밤새 방을 따뜻하게 유지할 굵은 장작이 큰 글감이고, 굵은 장작에 불을 붙일 잔가지가 작은 글감이다. 잔가지가 충분히 있어야 불을 지피기 수월하다. 가장 먼저 잔가지에 불은 붙인다. 잔가지가 중간 크기의 땔감을 태우면 가장 나중에 큰 장작에 불이 옮겨 붙는다. 굵은 장작이 스스로 탈 때까지 불을 유지하려면 잔가지와 중간 크기의 땔감이 충분해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구성할 작은 글감이 많아야 한다. 글 분량을 채우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작은 글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글감이 충분하다면 억지로 문장을 늘이지 않더라도 A4 용지 한 장은 거뜬히 채울 수 있다. 두 장, 세 장 쓰기도 가능해진다. 물론 긴 글을 지루하지 않게 쓰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긴 글은 쓰려면 독자의 시선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는 구성의 힘이 필요하다. 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글감에만 집중해보자. 땔감이 있어야 불을 붙이듯, 글감이 있어야 구성을 짜지 않겠는가. 


앞서 '글쓰기의 시작, 메시지 찾기(https://brunch.co.kr/@tellcorea/495)'에서 밝혔듯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정하면 글감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데 글감이 풍성하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 메시지에 불을 붙일 땔감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기사와 에세이는 글감을 찾는 방식이 사뭇 다르다. 기사는 '타인'을 표현하는 글쓰기이고, 에세이는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다.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취재를 통해 외부에서 기삿감을 찾고, 에세이를 쓸 때는 자신의 경험, 생각, 느낌이 글감이다. 기사를 쓰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고,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최근 마을조사단으로 활동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산골마을에서 열린 정월대보름 행사를 기록하는 글을 쓰려고 하는 청년이 있었다. 마을 정월대보름 행사라고 해봤자, 요즘에는 마을 회관에 오랜만에 모여서 음식 나눠먹고 끝난다. 예전처럼 달집을 태우고 풍장놀이까지 하는 마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마을 역시 정월대보름이라고 해서 특별한 행사는 없었다. 그래도 이 청년은 유쾌하게 윷놀이하는 모습, 장구를 치며 노랫가락을 흥겹게 뽑아내는 모습을 스케치로 표현하며 현장감 있게 글을 시작했다(스케치, 묘사는 매력적인 기록 방식이다). 그렇게 멋지게 글을 시작해놓고 A4 한 장도 못 채우고 글이 끝나버렸다. 도입부로 쓴 스케치가 글 분량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이런 글을 머리만 큰 과분수 글이라고 부른다). 맛있게 밥 한 숟가락 떴는데 이미 반찬이 다 떨어진 느낌이랄까. 


"마을 정월대보름 행사라는 것이 요즘 별 게 없죠. 글감 찾기가 어려울 거예요. 초고는 현재 정월대보름의 모습만 스케치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어땠을까요? 그때는 마을에 사람들도 많이 살았을 테니 뭔가 달랐을 거예요. 그리고 과거 정월대보름에 대한 주민들의 추억도 좋은 글감이 아닐까요? 현재뿐만 아니라 그 마을의 과거도 마을조사의 중요한 대상입니다."


이렇게 풀어서 이야기했지만, 요약하면 '취재가 부족하니 더 해보라'는 말이었다. 눈치 빠른 이 청년도 "이렇게 쓰고 보니 제가 취재가 부족했네요."라고 말했다. 추가 취재 이후 작성한 글에서는 이 마을 정월대보름의 현재와 과거, 주민들의 추억이 담겼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밋밋했던 글에 입체감이 생겼다.  


마을기자단이나 마을조사단과 같이 기록하는 글쓰기 강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글은 취재한 만큼 나온다. 취재가 부족하면 주장하는 글이 되기 쉽다.'

자신을 표현하는 마을에세이 강의에서는 다르게 이야기한다. 

'글은 살아온 만큼 나온다. 절대로 글이 삶을 넘어설 수는 없다.' 


에세이의 글감은 모두 자기로부터 나온다.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이다. 에세이 쓰기에 취재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생하게 들여다보고 싶다면, 왜곡된 자신의 기억보다는 부모님이나 학창 시절 친구들을 대상으로 당시 자신이 어땠는지 취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쓰기 강의 시간에 메시지를 찾고 나면 구성을 잡기 전에 글감을 늘어놓는다. 수강생들이 떠오르는 대로 글감을 이야기하면 내가 화이트보드에 받아 적는다. 그중에서 메시지와 관련 없는 것은 빼고, 풀어나갈 순서를 정하는 것이 구성을 짜는 기초 작업이다. 


글을 처음 쓰거나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일 경우에는 포스트잇을 나눠준다. 자신이 쓸 수 있는 글감을 포스트잇 한 장에 한 단어로 쓰라고 한다.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경험이 많으셔서 다양한 글감이 나온다. 해녀, 마을 전설, 첫사랑 이야기, 어르신들의 유모차, 갯벌에서 놀 던 추억,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자녀에 대한 걱정, 마을 특산물, 농사일, 마을사업을 진행하며 겪었던 갈등 등.


산에서 땔감 구하듯, 쓸만한 글감을 찾아보자. 머릿속으로도 찾아도 괜찮고 부지런하다면 취재를 나가는 것도 좋다. 겨울을 앞두고 처마 밑에 빼곡히 쌓여 있는 땔감을 보면 마음부터 따뜻해지듯, 글감이 많으면 글 쓰기 전부터 자신감이 생긴다. 밑천이 두둑하니 두려울 것이 없다. 


*메인 이미지 출처 : Photo by Andrew Ridl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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