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너무 오냐오냐 한다고요?
힘내라! 시골청년<3>
“요즘 사회 전반적으로 청년들을 너무 오냐오냐하는 분위기가 있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선배가 던진 말이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 편한 형처럼 지내는 선배의 입에서 ‘꼰대’ 냄새나는 말이 나왔다. ‘꼰대’라고 비꼬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오냐오냐’라는 말도 듣기에 거북했다.
‘오냐오냐하다’는 ‘어린아이의 어리광이나 투정을 다 받아 주다’라는 뜻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청년을 오냐오냐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인식이 깔려 있다. 첫째 청년을 ‘어린아이’로 생각하고 둘째 청년들의 의견을 ‘어리광이나 투정’으로 본다는 것이다. 청년을 성인으로서 온전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부족하기 때문에 키워야 하는 존재로 본다.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청년을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성세대들이 많다. ‘시골 청년은 너무 나이브하다’라는 말도 들었다. ‘나이브’라는 영어단어에는 '순진해 빠진'이라는 경멸적 의미가 숨어 있다. 도시에서 고생해서 성장할 생각은 안 하고, 시골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청춘을 허비하려고 하느냐고 꾸짖는다.
그래도 지역의 좋은 선배니 선의로 해석해보자. 오냐오냐하면 과잉보호로 이어져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나약해질까 봐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살아온 세대다. 그 시대에는 직장 선배가 하늘같았고, 선배의 갈굼은 ‘사랑의 매’와 비슷한 것이었고, 고생하더라도 선배를 따라 잘 참고 배우면 성장한다고 믿고 살아왔다.
일터에서도 자신이 살았던 방식으로 청년들을 대한다. 그러니 6시에 칼퇴근하는 90년대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청년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처럼, 청년에게 애정을 가지고 하는 말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어그러진 애정이다.
청년은 자식이 아니고, 기성세대들은 아버지가 아니다. 청년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우리가 언제 오냐오냐해달라고 했느냐”는 답이 돌아온다. 지역에서 만난 20대 청년들에게 ‘이 사회가 청년을 오냐오냐하는 것 같으냐?’라고 물어보니 “오냐오냐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청년이 살아가기에 이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고 답한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방식으로 섣불리 다른 존재를 판단하지 말자. 기성세대가 대신 답을 보여주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했다. 청년들도 ‘노답’ 같은 세상에서 답을 찾느라 끊임없이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니 제발 청년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응원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