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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맹 May 21. 2019

낯설음이 무서운 우리 아이에게

낯설지 않을 때까지 이야기해주기.

                                                      

낯선 것에 대한 공포.
제한된 관심사.
반복적 탐색.
단순한 조작.
자극적인 시지각에 대한 집착.
상호작용의 결핍.


우리 아이처럼 아무렇게나 놀지 못하는 아이들의 놀이 방식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런 묘사와 개념화를 대할 때면 매번 마음이 아팠다. 우리 아이는 그저 자기 좋은 대로 놀고 있을 뿐인데, 그렇게 놀고 있는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의 장애를 설명하는 징표가 되었다.

이제는 담담하게 마주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깊은 한숨을 부르는 내 숙제의 일부이다.

풀어내기가 아주 까다로운 과제.


놀이 방법을 보여주고 가르쳐준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버려두면 스스로 움직여 변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속은 타지만 최대한 많은 것들을 가능한 한 자주 경험시켜 익숙하게라도 만들어주는 것 말고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놀지는 못하겠지만, 비슷해 보이기라도 할 때까지 여기저기 많이 데리고 다니는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평일 예약이 꽉 차 있지는 않은지 당일 오전에 예약이 되어 키즈아트카페라는 곳에 처음 가봤다.


모래나 점토를 만지기 시작한 지도 몇 달 되지 않은 우리 곰이는 밀가루실에 들어서자마자 선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들어가 삽질에 밀가루 뿌리기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 속에서, 곰이는 발도 한 발짝 움직이지 못하고 5분 남짓 고개만 겨우 돌리며 서 있었다.

놀아보라며 등 떠미는 엄마 성화에 못 이겨 안으로 좀 들어가려는데 마침 다른 엄마가 개구쟁이 아들에게 소리쳤다.

"가만히 앉아서 놀아!"


그 아들은 아랑곳도 않는데 대신 곰이가 그 자리에 얼어붙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앉아서도 한동안 멍하니 있던 아이는 유리벽 너머에서 자동차 가지고 놀으라는 엄마 등쌀에 겨우 자동차 하나를 당겨와 밀가루 대신 바퀴를 굴리며 나머지 15분을 버텼다.

이제 그만 나오라는 말이 들리기는 하는지, 일어나지 않고 혼자 남아 계속 자동차 바퀴만 굴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속이 타들어간다.

아까 그 엄마가 와서 다시 큰소리로 얘기해주면 좋겠다.

"이제 그만 앉아서 놀아도 돼. 움직여!"



결국 내가 들어가 데리고 나오니 물감놀이는 이미 시작되었고, 아이들이 저마다 붓을 들고 벽에 유리에 물감칠을 하고 있다.

곰이도 쥐여주는 붓을 들었다. 전 같으면 붓을 받자마자 내팽개쳤을 텐데...

아니다, 방수 옷을 입는 것부터 난항이었을 거다.


벽에 한두 번 문질러보지만 이내 물감이 떨어져 아무 색도 나오지 않는다.

곰이는 팔레트에 있는 물감을 다시 묻혀와 칠하면 된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 건지, 붓 끝을 눈 앞에 대고 붓을 보기 시작한다.

물감이 머리에, 눈에, 코에 묻기 시작하니 그걸 닦기 위해 진행하시는 선생님과 씻으러 오가기 정신없고, 이미 윗옷은 다 젖어버렸다.

물감 스프레이, 자동차, 풍선, 여러 가지 놀잇감이 연이어 나왔지만 역시 곰이는 탐색만.



주말에 마트에 가서 모래놀이 세트를 샀다.

날씨가 좀 풀리면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모래놀이터에서 둘이 주저앉아 삽질 좀 하려고.

직장 다니며 바쁘다는 핑계로 두어 번 꺼내보고 구석에서 재우고 있는 물감놀이 세트도 다시 열어야겠다.


아... 그런데 곰이는 너무 바쁘다.

매일 어린이집에 치료실에 쫓기듯 끌려다니느라 단지 안을 산책할 시간도 별로 없는 아이와 잠깐이라도 즐거운 놀이를 하기 위해 기꺼이 힘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나에게 있는가.

결국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나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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