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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맹 May 27. 2019

아이를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자꾸만 돌아보는 못난 엄마의 바람

저번 달부터 새로 수업을 시작한 놀이치료사가 우리 곰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며 이것저것 물어온다.

작년 봄 병원에서 발달검사를 하면서부터 치료 상담을 다닐 때마다 수없이 대답하고 검사지에 써와서 달달 외울 지경인 것들이다.

우리 부부의 나이, 직업, 학력, 임신과 출산과정에서의 심리상태와 병력, 출생 직후 곰이의 상태, 성장과정, 신체발달 지연에 관한 사항, 이상 징후를 발견한 시기와 내용, 치료이력과 예후 등 곰이가 태아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4년을 아우르는 이야기 중 간단한 사항 일부와 곰이가 좋아하는 놀잇감이나 놀이에 대한 질문이다.


의사는 전반적인 발달지연과 장애 진단 소견을 이야기하며 혈액검사를 권했다.

장애의 원인이 선천적인 것인지 알아보기 위한 검사였지만, 우리는 그 검사를 하지 않았다.

의사는 장애의 원인이 선천적인 데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나 몰라도 부모로서 우리는 그런 게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장애"

그 말에 이미 얼이 나가 있는 상태로, 그저 건조하게 장애 진단이 나왔으니 치료에 관한 이야기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쪽에 가서 논의하시고 자폐인지도 궁금하다면 그건 소견서를 적어줄 테니 소아정신과에 가서 물어보라고만 하는 의사에게 너무나 화가 난 채로 진료실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물었었다.

"혈액검사를 꼭 해야 하나요? 선천적인 장애인지 아닌지를 알게 되면 뭐가 달라지나요?"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만 선천적인 원인에 의한 장애라는 게 확인되었다면, 우리 부부는 둘 중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장애를 물려줬다는 죄의식과 서로에 대한 원망으로 더 힘들었을 테고, 치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는 열패감으로 의욕을 잃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 곰이의 진단명은
 "원인미상의 전반적인 발달지연, 지적장애"가 되었다.


"원인미상"이지만, 치료 상담을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훑게 되는 임신, 출산, 성장과정을 복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 하혈을 하지 않았더라면 곰이는 괜찮았을까"

"출산 전 내 혈압이 높아서였을까"

"일찍 낳아서였을까"

"침대에서 떨어질 때 뭐가 잘못된 건 아니었을까"

"산후 우울증 때문은 아닐까"......


하혈을 했던 그 날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그 불편했던 점심식사 자리에 나가지 않을 텐데.

의사가 뭐라고 하든 아이를 조금 더 품고 있을 텐데.

뒤집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하도록 집에서 더 엎드려 놓을 텐데.

재활의학과에 가서 교정기를 채워서라도 빨리 걷게 할 텐데.

아, 그랬으면, 그랬으면, 우리 곰이 지금 말은 했을까.


나는 앞으로 돌이킬 수 없는 그 시간을 얼마나 더 리와인드해봐야 할까.

결혼 3년 반 만에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를 가지고, 힘들었지만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그 시간이 자꾸만  상처가 되어간다.

두렵다.

곰이와 보내는 행복한 순간들이 다 상처가 될까 봐.

자꾸만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가 커가는 기쁜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 봐.


곰이의 입체초음파 사진

~ 툭 튀어나온 이마, 삐죽 내민 윗입술까지 초음파 사진인데도 아빠 얼굴과 너무 똑같아서 가족들이 다 많이 웃었는데, 정말 아빠랑 똑같은 얼굴을 한 아이가 태어났다.

놀이치료사는 임신 시기 하혈 등으로 인한 엄마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곰이에 관한 정보 중 하나로 체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는 그때 아이가 잘못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고, 살면서 이때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아이를 품은 임신부 중 불안한 마음 없이 완벽하게 안정된 심리를 임신기간 내내 유지하다 출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니 임신기간 중의 심리요인 같은 건 제발 장애의 원인을 연구하거나 장애아동에 관한 통계를 낼 때 질문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그게 자폐아의 장애 원인이 고학력 중산층 엄마의 냉정한 양육태도에 있다고 했던 그 말도 안 되는 옛날 '냉장고 엄마 이론'과 무엇이 다른가.

뚜렷한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도 없는 그저 추측이나 짐작일 뿐, 혹여 입증이 된다 해도 치료에 크게 도움을 줄 것 같지 않은 설(說)을 통계와 함께 내놓으면 그럴 듯은 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묻고 싶다.

남다른 아이를 어떻게든 사회 안에서 살 수 있게 하려고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치료에 절박하게 매달리는 엄마들의 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라는 걸, 아는지.

알면서도 외면하는 건지, 내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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