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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맹 Jun 12. 2019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하지 말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

휴직 결심을 하면서, 막연하게 그려왔던 내 인생의 방향을 틀어 몇 년간은 생활의 모든 초점을 아이에게 두고 살아가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를 위해서, 아이 미래를 위해.”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아이를 위해 여건만 된다면 엄마가 그렇게 해주는 게 가장 좋겠지 이야기했고, 나도 그게 엄마로서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여겼다.

휴직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거의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당위적인 결정에 목적 또한 분명했으므로 나만 의지를 다잡고 행동하면 됐다.

흔히들 언어지연 치료의 골든타임이라 이야기하는 생후 36개월을 막 지나고 있던 시점이었고,

아이는 아직 엄마 이외의 말을 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하루가 아까웠다.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휴직을 결정하는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이를 돌봐주며 내 월급에 생계를 의존하고 계시던 친정 부모님의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먼저 걸렸고, 내 직장 경력이 또다시 오랜 기간 단절될 것에 대한 걱정, 그럼에도 온 집중을 다 해야 할 정도로 치료의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결론은 같았다.

휴직을 끝내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즈음 우리 곰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부모로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자, 후회가 없게.      


결혼 후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나는 임신을 준비하며 직장을 반년 쉬었다.

그리고 임신 기간 몇 달만 복직했다 다시 들어갈 염치가 없어 휴직 상태 그대로 아이를 낳았다.

돌 지나서까지 남의 손 빌리지 않고 키우겠다며 1년 반을 더 아이와 있다 직장에 돌아가니 나는 내리 3년을 놀다 온, 신규직원보다 더 골치 아픈 존재 취급을 받았다.     


복직하고 1년 반, 이제 일에 속도도 붙고 좀 할 만한데 다시 휴직이라니...

자식을 위한 일인데 엄마가 자기 일과 아이를 양쪽에 놓고 저울질을 하다니 욕먹을지 모르겠다.

휴직이 허용되지 않는 직장이라 아예 퇴직을 하고 아이 치료에 매달리는 엄마들도 많으니 나는 호강에 겨워 투정을 쌈 싸먹는 소리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 직장 동료들 대부분은 아이를 한 둘 낳아서 힘들지만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길게 잡아 십여 년 고생하면 그 두 가지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살 만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나만 아이 하나에 매몰되어 직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무조건 나아질 거라는 보장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했다.     


휴직 발령 전날까지도 내 마음은 오락가락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막상 휴직에 들어가고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니, 진작 쉴 걸 생각이 든다.

잠에서 깨면 늘 출근하느라 바쁘거나 이미 나가고 없었던 엄마가 일어나라고 엉덩이를 두드리자 아이는 그 상황이 익숙해질 때까지 2, 3주쯤 아침마다 방실방실 웃으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장애통합반이 있는 어린이집으로 옮겨 적응시키고,

비용이 훨씬 덜 들면서도 치료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복지관에 대기 신청을 넣고,

새로운 치료를 추가하기 위해 상담을 다니고,

엄마의 직장 여건이 아닌 아이 컨디션에 맞추어 치료시간을 이리저리 조정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둘이 공원에 박물관에 민속촌으로 놀러 다니는 일을

휴직 시작과 함께 동시다발로 진행했다.

이달 말에는 둘이서 제주도에도 가보려고 한다.

직장과 집을 오가며 정신 못 차리는 엄마나 정보력과 체력이 떨어지는 할머니는

결코 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직장에 다닐 때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건 사실이지만 그때만큼 바쁘기도 하다.

친정엄마와 적당히 나누어 가지고 적당히 모른 척하며 쌓아두던 집안일이 모두 내 차지가 되었고,

휴직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공부할 것도 알아볼 것도 실행할 것도 많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내가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살아간다.

나름으로는 열심히.  

   

“이 모든 건 아이를 위해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이는 힘들어했다.

매일 아침 엄마가 있어 좋은 건 잠깐이었다.

늦게 일어나면 그러는 대로 여유 있게 등원을 시키던 할머니와는 달리 엄마는 흔들어 깨워 밥 먹어라 세수하자 빨리 나가자 주문이 많다.

장애전담 어린이집의 루즈한 일정과 조용한 분위기에 익숙해 있던 아이는 통합 어린이집의 바쁘고 시끄러운 생활을 소화하느라 오랫동안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치료가 늘었고, 치료를 늘리느라 상담을 다녀야 했고, 그만큼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안쓰럽지만 적응해주길 바라며 시간이 지나갔다.

    

한 달쯤 지나자 아이는 많이 피곤해하더니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바쁜 일정에 병원까지 들러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엄마 욕심 채워주느라
아들 고생이 많아.
미안해.
그래도 힘내자.
미안해."
  


곰이는 곰이 좋은 대로 놀고, 먹고, 크면 된다.

아이 자신이 좋으면 된다. 그뿐이다.

아이의 미래...

아이가 원하는 미래가 다른 사람들 꽁무니를 쫓아 고개 숙이고 숨 가쁘게 뛰는 삶일까.

나는 알 수가 없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해주어야 곰이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왜 말을 빨리 해야 할까?

말이 더 늦어지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또래와 인지 격차가 커지니까.

왜 또래의 수준을 따라잡아야 할까?

앞으로 학교에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야 하니까.

왜 자존감이 높아야 할까?

아이가 더 많은 걸 성취해나갈 수 있고, 미래가 달라지니까.

그래야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까.

그러니 골든타임이 더 지나가 버리기 전에, 곰이 입을 열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더 더 더 힘들다.

이건 발달장애 전문가들과 치료센터에서 하는 이야기다.

    


사실 나는 그런 걸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만큼만 비슷하게 살아주었으면 했을 뿐이다.

     

또래들과의 차이가 점점 더 많이 벌어지더라도,

아이는 또 자기 나름의 기준을 잡아 자존감을 높일 방법은 없을까.

학교에서 학습을 따라가고 아이들과 적당히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지능과 사회성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따뜻하고 밝은 아이로 좋은 친구 한둘 사귀며 살 수는 없을까.

그 한둘 있는 친구가 꼭, 장애가 없는 아이여야만 할까.

공부 잘하고 사교성 있는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괴롭히고 괴롭힘당하는 세상인데.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마음 맞는 친구 하나 사귀어

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걸로도 된 게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마 분명 듣게 될 테지.     

“아이가 아직 어린데, 벌써 그렇게 놓으면 어쩌냐.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야지.”  
   


예, 설마요.

우리 아이가 장애 없는 어른으로 자랄 희망,

그 한 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는 사람이 누굴까요.

   

그런데 그 희망 그게 결국은 내 욕심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니 아이에게 너를 위해서라고 하지 말자.

오늘도 치료실에 끌려가 “일반적인 놀이”를 배우고 나올 아이 얼굴이 아른거린다.

    

“곰아, 고마워.
오늘도 엄마 욕심 채워주느라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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