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숨부터 내 전부를 사랑한

나의 엄마

by 뮤뮤

이혼 결심보다 더 힘들었던 것이 바로 엄마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어떻게,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다 들으시면 뭐라 하실까. 참고 살라 하시려나. 고민 끝에 그냥 다 말하기로 했다. ‘그래야 이해해 주실테니.’ 하는 생각으로. 그간 버텨온 이야기.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모욕적이었는지. 점점 커지는 공허로 내가 어떻게 병들어 갔는지. 핸드폰 너머로 엄마의 깊은 한숨이 이따금씩 들려왔다. 가감 없는, 그동안의 나의 시간을 고해성사하듯 털어놓았다.


"사람 같지가 않네. 끝내라."


일상이 흔들릴 아이들의 정서적 불안, 본인들로 인해 부모가 헤어졌다는 자책, 이로 인한 자존감 저하 등 이혼을 대하는 주변의 흔한 걱정과 우려 따위는 엄마에겐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내 딸의 행복과 자존의 회복만이 엄마의 유일한 걱정과 바람이었다. 애써 담담하게, 하지만 그 뒤엔 숨죽인 울분과 아픔, 슬픔이 서린 그 한마디가 심장을 콕콕 찔렀다.


나와 남편은 결혼 준비부터 삐걱거렸다. 우리의 결혼은 '사랑'보다 '계산'이라는 이름표를 단 철저한 분담 비용의 작성 과정이었다. 나는 없으면 없는 대로 각자의 형편에 맞는 시작을 원했지만 남편은 나도 이만큼 쥐어 짜냈으니 너도 그만큼의 성의를 보이는 게 상식이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나도 1억을 준비하니 너도 1억에 준하는 수준으로 준비해야 상호 공평한 것 아니냐.' 하는 식이었다. 물론 안다. 대한민국 평범한 중산층 자식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집 같은 집 하나 구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전세든 매매든 억대 자금이 필요했고, 둘 다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은 것이 많지 않았기에 당연히 대출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라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은 대출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자동차도 전액 현금 구매한 사람이니 말 다했다. 하지만 내게 그 마만한 돈이 어디 있겠나. 결국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했다.


또 종교 문제도 있었다. 첫 상견례 날, 어머니는 “주말마다 교회는 꼭 나가야 해요.“ 라고 앞뒤 잘라 말씀하셨다. 이에 엄마는 ”다 큰 성인이고, 종교의 자유란 것이 있어 제 아이들에게도 강요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라고 하셨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딱 잘라 ”안됩니다. 그럼 어렵습니다.“ 라고 즉답하셨다. 나는 그날의 냉랭한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만약 시아버지가 긴급 진화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자리를 박차고 나오셨더라면, 그럼 어땠을까.


나중에 아빠께 들었지만 그날 상견례 이후 엄마는 몇 날 며칠을 속상해 우셨다 한다. 내 딸 팔아넘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 앞날이 불 보듯 뻔한데 이 결혼 꼭 시켜야 하느냐, 시집 안보내면 안 되겠느냐 하셨다 한다. 결국 우린 1대 1 비율까진 아니지만 부모님 등골 하나씩을 빼 대출 없는 신혼집을 마련했고, 나는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야 했다. 나는 그렇게 엄마 가슴에 큰 대못 하나를 박으며 결혼했다.


다시 돌아와 결론적으로 나는 엄마의 예견대로 불행한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겠다 선언했고, 며칠 뒤 엄마는 이혼 전문변호사를 선임해 주셨다. 늘 온화한 엄마지만 결단이 서면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단호하다. 특히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거대 파도도 두려움 없이 맞서는 분. 그 힘은 권력에서 오는 것도, 이성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오직 한 가지, 자식을 향한 깊고도 흔들림 없는 사랑. 때로는 바람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바위처럼 단호한 그 사랑 위에서 나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결국 삶을 버텨낸다. 지탱해 낸다.


친정집에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대학 입학 전까지의 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첩이 있다. 사진첩 맨 첫 장에는 핏덩이처럼 검붉은 고구마 인간인, 누가 봐도 못생긴 신생아가 한껏 찡그린 채 울고 있다. 그리고 그 사진 옆에는 엄마의 동글동글 예쁜 글씨로 꼭꼭 쓰여진 메모*도 함께 끼워져 있다.


나는, 엄마라는 건강하고도 강인한 영혼을 자양분 삼아 피어난 흔들리지 않는 어여쁜 꽃이다.




*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첫 공기를 들이켜 울음을 터트린 순간부터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단다.


- 아빠엄마가 / 8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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