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코메디로 가볼게요.

자랑하고 있는데~ 부러우면 500원

by 뮤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아픔을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내가 그렇다. 이혼을 마음먹은 순간부터 빠지기 시작한 몸무게는 이제 43kg 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키가 몇이냐 묻지 마시라. 40대 여자평균 기초대사량과 BMI(체질량지수) 같은 것도 검색해보지 마시라. 이럴 때 T력은 그냥 잠시 넣어두는 것이 영장류 최고 인지력에 빛나는 호모사피엔스의 덕목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이러한 연유로 결혼하자마자 임신해 불은 체중과 붓기로 예식 후 한 번도 껴보지 못한 웨딩링이 이혼 이슈를 맞이해 헐렁하게 맞아 들어간다. 인생의 아이러니란... 요즘은 그냥 이유 없이 웃음이 나온다.


나는 지금 결혼 후 홀로 한가로이 맞이하는 첫 명절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비옥한 땅 같은 이토록 풍요로운 대(大) 추석명절이라니. 드디어 하나님의 은총이 제게도 이렇게 임하시나이까. 하하하.


나는 작은아이 돌 갓 지나고부터 시댁 명절을 치러야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남편과 시어머니 두 분이 결정한 사항으로 나는 그저 통보받았을 뿐이다. 하하하. 또 웃음이 나온다. '왜? 아버님, 어머님도 다 계신데 굳이 왜?' 아무리 자애로운 나라도 당연히 이리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가정의 화평이 곧 나의 화평이요.'라는 평소 소신대로 그냥 그러하기로 했다. 물론, 얼굴로는 이미 온갖 불평, 불만을 다 늘어놓았으니 아무 표현도 않고 상호 기분 좋게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해 명절부터 내가 명절 상을 준비했다. 어머니는 떡이나 과일 같은 주전부리를 사 오셨고, 동서 내외는 시장표 모둠 부침개와 아버지가 좋아하신다는 홍어무침을 사 왔다.


우리 친가는 '집 근처 백리 안에 배고픈 자가 없게 하라.' 하셨다는 선대의 뜻에 따라 명절엔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준비하고 이웃과 나누셨다고 한다. 그러한 가풍 때문인지 명절이면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손자, 손녀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손수 명절 음식을 준비했었다. 할아버지는 밤을 깎으셨고, 할머니는 식혜(감주라고 하셨었다.)를 담그셨고, 아빠는 송편 빚을 쌀가루를 방앗간에서 받아오셨고, 큰집 맡며느리인 엄마와 작은엄마들은 부침개를 마당이며 마루며 둘러앉아 커다란 채반에 몇 판이고 부치고 또 부치셨다. 좀 특별한 기억이라 한다면 이웃 할머니, 아주머니들도 오셔서 함께 음식을 준비하셨었다는 거다. 교과서에서 배운 품앗이를 직접 보고 자란 거다. 이렇듯 내게 명절이란 다 같이 모여 음식을 준비하는 것부터가 명절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나 남편네는 간소화라면 간소화. 각자 해오거나, 사 오거나, 방법이야 어쨌든 알아서들 가져온 음식을 하루 후딱 차려먹고 끝내고 마는 것이니 이 정도면 일도 아니겠다 싶어 너그러이 포용한 부분도 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표정은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 재차 강조한다. 마지막 존심이다.


하지만 나, 각막에 새기듯 익혀온 친가의 명절 풍습 덕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가족에게 대접할 음식을 직접 만들었다. 그냥도 아니다. 휘황찬란하게 준비했다. 구절판, 고추장더덕구이, 족발냉채, 사태수육, 보리굴비찜, 연어말이샐러드 등등. 하필 손도 더럽게 많이 가는 것만 골라해 댔다. 맞다. 지팔지꼰인 것이다. 나도 xx호텔 한식 명작이 내놓은 명절 패키지를 돈 주고 샀으면 그만일 것을 미련하게도 전날부터 준비해 새벽같이 일어나 지지고 볶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짓을 자발적으로 해 온 것이다. "너가 애썼다." 이 말 하나 들으려고. 이 정도면 남편도 내 애씀을 알아주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참으로 애처롭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깟게 다 뭐라고. 인정욕구가 사람을 망친다. 이제 알았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그저 익숙함 속에 묻혀버린 소중함이 사라진 뒤에야 그 텅 빈 허전함에 울기 시작한다. 매일 손수 짓는 밥상 위에 가족의 건강을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고, 깨끗하게 빨아 널은 이부자리 안에 꽃피는 애정이 있음을. 함께 떠들고 웃는 목소리, 서로를 위하는 따스한 손길. 사랑은 말보다, 행동보다, ‘존재’ 그 자체로도 충분히 큰 선물인 것을. 그러니 그 존재가 상하지 않도록 매 순간 살피고 돌봐야 하는 것을. 남편은 정녕 모르는 걸까. 13년을 그렇게 붙잡고 헤아려보려 해도 역시나 잘 모르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순간. 아이들과 남편은 엄마와 아내가 없는 서울집에, 나는 아이들과 남편이 없는 친정 시골집에, 우린 그렇게 떨어져 있다. 나는 고되게 준비했던, 모두가 함께 앉아 있던 명절 그날 밥 상이 그립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 나 스스로를 인정해 주는 시간을 갖는 중이니까.


참 애썼다. 참 고생했다.


라디오에서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 가 흘러나온다.


-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매일 그대와 도란도란 둘이서 매일 그대와 얘기하고파. 새벽 비 내리는 거리도 저녁놀 불타는 하늘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걸 같이 나누고파. 매일 그대와 밤에 품에 안겨 매일 그대와 잠이 들고파. 새벽 비 내리는 거리도 저녁노을 불타는 하늘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걸 같이 나누고파.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얘기하고파. 정말 매일 그대와 진짜 노래하고파 매일 그대와


노랫말이 너무 아름답다. 그저 흐르는 배경음악이 아니라 내 손에 잡히는 실체이길, 온기이길, 향기이길.

언젠가 그리될 거다.

나는 지금 누구보다 한가로이 이 명절을 누리고 있으니 분명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모두 행복한 한가위 되시기를.




작가의 이전글실패라 부르고 싶지 않지만 끝내 멍에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