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가.
그래. 우리가 정말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끄끝내 만나겠지.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실체도 없는 흐릿한 감정 하나로 버티기엔 그것이야 말로 희망고문인 것이다. 그래서 놓는다. 차라리 꺼져버리라고 해줬으면 좋으련만. 그편이 상대에 대한 확실한 배려인 것을. 온통 흉터였을 그 마음에 나는 너무 버거운 비구름이었겠지. 흙 한 줌도 적시지 못하고 그쳐버릴 한낮의 소나기였겠지. 나도 배려가 없었던 것을 인정한다. 너는 너의 언어로 이미 충분히 알렸는데 내가 눈치 없이 굴었다. 오히려 미안한 것은 나인 것이다.
상대를 마음껏 미워하고 탓하는 것은 너무 쉽다. 그것은 정말 한없이 가벼운 것이다. 그러니 소중한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 다 모자란 내 탓이다. 오히려 고맙다. 너무나 오래간 잊고 있었던 내 안의 낙원을 다시 찾게 해 주었으니 그것으로 된 거다. 내가 뭐라고 또 구원자라 착각했으니 바보 같은 건 나다. 그렇지만 그 마음은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손 잡아 주고 싶었음을. 함께 살아내고 싶었음을. 잠시 망설일지언정 난 정말 끝까지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단단히 운동화 끝을 동여매고 있었음을. 그렇지만 이제는 하지 않기로 한다. 이런 방식으로도 작별을 고하는 사람도 있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 정말 이제 되었다.
나는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서 씨앗을 다시 뿌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 크게 숨을 다시 한번 고른다. 너는 너의 길을 다시 걸어 꽃 피워라. 난 이제 막 꿈틀거리기 시작한 번데기지만 너는 너의 그 젖은 날개만 화창한 햇살을 만나 크게 펼치기만 하면 된다. 날아오르기만 하면 된다.
문득문득 네가 그리울 거다. 오늘은 어떤 표정으로 앉아, 어떤 하늘을 맞이하고 있을까 궁금해질 거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놓는 게 힘든 사람. 그래서 이 날 이때까지 이럴 수 있었던 거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지기로 마음먹었잖은가.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며 자유로워지겠다 다짐하지 않았나. 이제 더는 나올 눈물 따윈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르지 않는 샘처럼 여전히 잘도 흘러넘친다. 하지만 나는 뭐든 잘 잃어버린다. 잊어버린다. 그러니 나는 잔뜩 성난 얼굴을 한 솜사탕 같은 너를 잃어버릴 거다. 잊어버릴 거다. 이렇게 멋진 나를 놓친 너는 후회할 거다. 나는 아직 번데기다. 그 안에 뭐가 들었을지 나는 너무 잘 안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이렇게나 다른 두 사람이다.
나는 그저 뚜벅뚜벅 걸어 나갈 뿐이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너는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천천히라도 그렇게 가면 된다. 자유롭게, 저 멀리.
그러다 정말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잘 지냈느냐' 한번만 웃어주면 된다.
정말 너는 그거면 된다.
안녕.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