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바라본 나라는 사람
이혼이란, 서로를 끊임없이 비정하고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잔인한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십여 년의 세월을 그저 하염없이 찢고 더럽히는, 사랑과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쌓아온 모든 기억을 파괴하는 소모전인 것이다. 바람 잘날 없었고, 매일이 실망과 설움으로 점철된 인내와 통곡의 세월들이었다.
품격 있는 인생을 살고자 했던 한 여자는 이제 아이들에게 제 아빠와 시부모를 험담한 혼인 파탄 원인 제공자가 되고, 죽음을 고민하고 있는 내게 진실한 위로를 건넨 고마운 친구에게 보냈던 나의 마음을 담은 문장들은 불륜의 정황으로 변질되기도 하는 것이다. 참으로 우습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걸까. 언젠가 이 글들도 읽을 줄 안다. 자신에게 더 유리한 증거를 수집해야 할 테니까. 하지만 난 한 점 부끄럼 없다. 미안한 일이 있을 순 있어도 진심으로 나는 이 결혼을 유지하길 원했다. 제발 아이들 앞에서 내게 욕하지 말아 달라. 제발 내 가족들을 향한 거친 말을 멈추어 달라. 나를 당신의 가족으로 인정해 달라. 나를 좀 봐 달라. 말하지 않았나. 절규하지 않았나. 간청하지 않았나. 애원하지 않았나. 사람이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이 폭력일까. 망치로 으깨는 듯한 야만적인 말. 칼로 베는 듯한 차가운 무시와 냉소. 정서적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잔인하다. 마음을 파괴하는 힘은 훨씬 강력하다.
매번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 얼마나 사람을 좌절케 하고 사라지게 만드는지 아는가. 이제 정말 끝을 향해 달려가는 듯하다. 누구나 해줄 수 있는 흔한 말 한마디도 너에겐 들을 수 없었다. 기대할 수 없었다. 고함지르고 욕지거리 듣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눈물의 시간을 보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세월을 견뎠다. 발작하지 않는 것으로 이만하면 됐다 자위해야 했던 수많은 밤이 있었음을 나는 이렇게라도 고해야 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렇게 계속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이 결혼생활에서 나는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어떤 가정을 이루고,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나는 그렇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해왔다.
나는 결코 비정하고 부도덕한 사람이 아니다.
비록 헤어짐을 각오하고 있을지언정 남편을 진실로 사랑했고, 아이들을 위했고, 한 가정을 끝까지 지켜보고 자 처절하게 분투했던, 사랑받고 사랑 주길 간절히 원했던, 너무나 외로운 한 여자일 뿐이다.
이혼은 이렇게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인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어떤 여자도, 어떤 사람도 사랑했던 과거 때문에 조롱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실시간 파괴되어 가는 영혼을 느끼면서도 희생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을. 누군가의 참된 고통 앞에서는 최소한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간신히 견딘 하루 위에 또 하나의 숨을 얹는다. 살기 위해. 내 아이들의 엄마로, 나라는 사람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해.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을 원망하지 않기 위해. 이 글이 어딘가로 흘러가더라도 누군가의 유리한 증거로 왜곡되더라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끝까지 사랑했다는 것을.
오직 살아남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끝자락에 서 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 자리에서 여전히 나는 사람이고자 애쓰고 있다.
더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