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달콤한 과일퓨레를

상실 그리고 직면

by 뮤뮤

사람은 언제 무너질까?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했을 때.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의 끝을 보았을 때. 절대적이라 믿었던 신념이 완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스스로를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더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이유야 다양할 것이다. 저마다 중요하다 여기는 지점도, 스스로를 지탱해 온 삶의 기둥도 다 다르니까. 그러나 이 모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상실이다. 사람은 내 것이라 믿었던 것을 잃었을 때 가장 깊이 좌절하고 무너진다.


큰 아이가 이유식에 막 적응했을 무렵 과일퓨레를 만들어 준 적이 있다. 바나나, 사과, 배 같은 단맛 강한 과일만 곱게 갈아 뭉근하게 끓여 만든 과일퓨레. 몽글몽글 끓어오르는 김안에 농축된 향긋한 과일향이 온 집안에 내려앉던 기억. 접하는 모든 것이 처음이고, 미지의 세계였을 아이에게 그 한 숟가락의 과일퓨레는 태어나 경험한 가장 황홀한 맛이었을 것이다. 눈이 똥그래지고 숟가락을 향해 버둥거리는 짧은 팔다리가 너무 귀여워 숟가락을 숨기는 시늉을 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아이는 그토록 서럽게 울었다.


상실은 단순히 무엇을 잃는 일이 아니다. 나의 세계, 나의 믿음, 나의 기쁨, 나의 시간까지 함께 사라지는 너무나 슬픈 일이다. 존재의 부재. 빈자리. 사람은 없어져 버린 그것을 마주해야 할 때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취약한 존재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그 세계를 얼마나 사랑하고 갈구했는지를 뒤늦게 마주하며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려온 결혼 생활도 그러했다. 행복한 미래만을 꿈꾸며, 그리며 마음껏 상상하고 기대했다. 처음엔 정말 이루어진 듯 보였다. 그러나 점점 느껴지는 애정의 부재, 이해와 존중의 결여, 의지할 수 없음에 대한 절망이 조금씩, 조금씩 나를 깎아 내렸다. 내가 쌓아 올린 세상을 무너뜨렸다. 가장 의지하고 싶고 기대고 싶었던 대상에게서 느껴지는 무시, 냉대, 경멸... 나의 일상은 그렇게 작은 조각들로 금 가며 천천히 무너져 내려앉았다. 나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아껴 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조차. 누구에게나 어둠이 아닌 빛은 필요하다. 어둠과 어둠은 더 큰 어둠을 빚어내기에. 잠시 들이친 희망은 그렇게 나를 또 무너지게 한다. 마음은 여전히 바다를 향하지만 눈물을 삼키며 키를 돌린다. 상실이다.


그러나 이제 와 깨닫는 것은 상실은 단순히 잃음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무너진 세계 위에서 내가 그 세계를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고, 그 부재가 얼마나 거대한지 마주하는 직면인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생활 속에서 스스로 깎아내리던 나를 견뎌냈던 힘. 그럼에도 따뜻한 마음을 향해 기어이 손을 뻗었던 용기.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사랑하고 싶은 나의 부러지지 않은 의지였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이제 이 빈자리를 마주한다. 아무도 채워줄 수 없고 그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나의 상실의 무게를 똑바로 바라본다. 무너진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세계를 짓는 더 단단한 벽돌을 만들어야겠다 다짐한다. 더 이상 외부의 애정이나 존중이라는 불확실한 재료가 아닌 오직 나 자신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견고함으로 말이다.


상실은 끝이 아니다. 나의 세계가 파괴되었음을 확인하는 행위이자 동시에 새로운 나를 건축할 터널의 입구인 것이다. 눈물을 삼키며 키를 돌린 그 배는 이제 나를 향해 다시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이 슬픔과 부재가 새로운 세계를 빚어내는 고독하고 치열한 노동이 될 때까지. 상실을 애도하고 그 애도를 에너지 삼아 다시 나아가야 한다. 오직 나만이 남아있는 이 빈자리를 견고한 나로 가득 채우기 위해.



혹시 당신도 사랑했던 것, 믿었던 것, 그리고 바라던 것을 잃어본 적이 있나요.

포기한 적 있나요.

그래서 당신도 서럽게 울었나요.

그랬다면 당신에게 과일퓨레를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오래오래 정성껏 끓인 과일퓨레를요.

그래서 당신이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



*이미지출처 : 티스토리(플랜B)